국악의 향기

행진음악 대취타

1701년에 그려졌다는 ‘일본 통신사 행렬도’와 정조가 수원으로 능행하는 모습을 담은 ‘능행도’를 보면 수백 명의 악대와 군대, 수행원들이 임금의 행렬을 따르는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장엄한 행렬의 선두에는 ‘취타대’가 있었다. 취타대는 왕의 권위와 나라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행렬을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에게 절대불가침의 왕권을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한국 전통의 행진음악인 ‘대취타’의 ‘취타’는 불고(취, 吹) 친다(타, 打)는 뜻이다. 즉 관악기와 타악기로 편성된 음악으로 호적과 나발, 소라, 태평소 등의 관악기와 징, 용고, 바라, 장고 같은 타악기가 함께 연주한다. 대취타는 왕이나 귀인의 행차, 사신의 방문과 군대의 행진 때 연주 됐는데 고구려 안악 제3호분에서 비슷한 모습이 보이고, 백제에서도 고(鼓)와 각(角)과 같은 고취악기가 쓰였다는 것으로 봐서 이미 삼국시대 때 부터 취타가 연주됐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하지만 대한제국 말에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면서 안타깝게도 형식을 갖추어 대취타를 연주한 적은 없었고 그 후 대취타는 민간이나 사찰의 의식에 사용되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6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 군장행렬에 국립국악원 대취타대 52명이 대취타를 재현한다.  그리고 1968년 육군에 의해 대취타의 편제가 부활되면서 본래의 위용을 되찾게 되었고, 197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

취타대에는 ‘집사’라는 이가 있는데 집사는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사람으로 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머리 위로 높이 들면서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 吹打) 하랍신다.” 라고 소리를 친다. 그러면 수백 군사가 한 목소리로 “예이” 하며 징 한 번에 북의 각을 두 번 울리고, 곧이어 선명하게 ‘태평소 가락’이 울리면 음악이 시작된다. 대취타를 연주 할 때는 전립을 쓰고, 노란색의 황철릭을 입고, 남전대라는 띠를 두르고, 미투리를 신기 때문에 그 모습이 화려하고 규칙적으로 리듬을 짚어주는 타악기들과 위엄 있는 나발과 나각이 어울려서 호령을 하듯 기운찬 느낌이 든다. 시인 노천명의 말대로 대취타의 소리는 “구경꾼을 모으는 소리(시 ‘남사당’ 중에서)”였으며 수십, 수백 명의 악사들이 일제히 대취타를 연주하며 행진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그 자체이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