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eople

송현석 / 치과의사, Hampton’s Dental

97년 코퀴틀람에 도착한 것은 제가 중학교 1학년때이었습니다. 이민와 영어부터 학과 공부까지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독하다’ 싶을 만큼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Simon Fraser 대학에 입학하여 일반 과학부를 2년 동안 다녔지만 미래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아 샤스카츄완 대학으로 옮겨 생화학 전공으로 학부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Western Ontario University에서 치과 대학 4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2014년 모든 과정을 마치고 에드먼턴 북쪽에 있는 드레이튼 밸리에서 첫 직장을 얻게 되어 2년 간 일했고, 비씨 주의 칠리왁에서 1년을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저기 다니며 살아본 곳 중 알버타 주가 가장 살기 좋았습니다. 알버타 주의 경기가 나빠져 지금은 예전만큼 살기가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정이 남아있고 친절하며 따뜻하였습니다. 밴쿠버만 해도 사람들은 많이 힘들어 합니다. 토론토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의 인상은 차갑고 서로 간의 정을 느끼기도 나누기도 참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각박해지고 살기 어려워져서 그런건 아닐까 싶습니다. 드레이튼 밸리에서 살면서 느꼈던 그 따뜻함이 생각 나 다시 캘거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이민왔기 때문에 영어로만 말할 거라 생각들 하시는데 저의 한국어를 들으시고는 이제 막 이민온 사람이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한국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오랜 이민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인의 어휘를 구사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도 자녀들에게 한국어 보다는 영어만 사용하도록 하는 가정을 봅니다. 그런데 자녀가 성장했을 때 가족간의 소통이 어려움이 생기면서 큰 문제가 되는 경우를 봤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으니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디스타임을 통해 치과의로서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는게 바쁘다 보니 치아는 가장 마지막에 신경쓰게 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가 아파도 참다가 더는 어찌할 수 없을 때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고, 의사로서 치료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뽑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해드릴 수가 없는 상황에 자신을 놓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임플란트의 경우도 발치 후 1년이 지나서야 찾아오시어 뼈 이식마저도 어려운 경우가 있으니 안타깝기도 합니다. 치석 제거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치석은 계속 쌓이고 더 많아지니 더 복잡해 지고 시간도 더 많이 요구됩니다. 치과 치료는 처음 방문시 검사하고 사진 찍는 비용이 좀 들지만 차후 방문부터는 비용부담이 반으로 줄어드니 가능하면 옮겨다니시지 말고 한 곳을 정해서 꾸준히 치료받으시길 당부드립니다. 의사가 환자를 잘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가이드 치료를 할 수 있게 되니 비용도 덜 들고 치료도 훨씬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쑥스럽지만 봉사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닌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렇게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취재: 백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