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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희 / 주부

1980년 캘거리로 와서 살기 시작했으니 벌써 39년이네요. 나의 이민 생활을 이야기 하자니 우리 시어머니가 먼저 떠오르는군요.

어머니의 희생과 정성이 아니었더라면, 그동안 나의 이민 생활은 생각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뿐인데, 며느리를 친 딸처럼 챙겨주시고 아껴주셨던 순간 순간들은 잊혀지지 않고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오십 대 후반에 캘거리로 오셨던 어머니는 칠순을 넘기실 때까지 우리와 지내시다 둘째와 세째가 태어났을 때 제 몸조리도 직접 해 주셨으며, 손녀 딸들 대학 입학하는 것까지 보시고는 다시 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 당시엔 노인회도 없어 또래 분을 만나 교제할 기회도 없었고, 일터와 집, 교회를 쳇바퀴 돌 듯 종종거리며 사는 아들 내외가 안쓰러워 맘 편히 여행 한 번 자유롭게 하시지 못하셨어요. 돌이켜보면 얼마나 갑갑한 삶이셨을까 싶어 마음만 아픕니다.

내가 캘거리로 오게 된 것은 언니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밴쿠버로 이사가서 살고 있지만, 당시 언니는 캘거리 한인 최초로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68년 5월 처음 그 언니가 이민을 왔고 이듬해 오빠가 토론토로 유학을, 그리고 다른 형제들도 모두 캐나다로 와 살고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지요.

처음 캘거리로 올 때 2살이었던 큰 딸 그리고 남편과 함께 언니 집에서 한 달간 신세를 지고 있었어요. 새벽 3시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일어나 보니 언니가 가게를 나간다는 것이에요. 언니를 따라 가게로 나섰는데,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르니 도움이 될 리가 없었지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둘러보니 삶은 달걀 껍질을 까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언니를 도와가며 일을 배우다 얼마 후, 시눅 건너편에 있던 런치 박스를 시작하였어요. 지금과는 달리 당시 샌드위치 가게는 참 호황이어서 덕분에 우리 가족의 좋은 수입원이 되어 주었어요. 덕분에 아이 셋 모두 방과 후엔 음악 교육도 시킬 수 있었고 둘째는 영국 유학까지 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를 돌아보면 참 바쁘게도 살았지만 사는 재미도 그만큼 넘쳤던 시절이었어요. 이젠 자식들이 나와 남편을 챙기는 나이가 되었어요. 어딜 간다고 하면 딸들은 용돈을 보내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조심하라며 여간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는 어머니께서 계시는 한국에 좀 더 자주 가려고요. 구순을 넘기신 시어머니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니 지척에서 지내며 얼굴이라도 자주 보여드려야겠다 싶어요.

이제 소망이 있다면, 우리 자식들이 하나님 품안에서 평생을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나와 가족을 돌봐주신 하나님께 받았던 축복을 이웃과 나누며 남은 평생 보내고 싶습니다.

 

취재: 백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