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인터뷰

[특별기획] 한국전쟁 참전 캐나다 용사들에게 듣는다-2부 [July 2, 2020]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ThisTime 특별기획

한국전쟁 참전 캐나다 용사들에게 듣는다 – 2부

 

 

Canadian soldiers staged hockey games just behind the front lines after a rink was created and hockey equipment flown in from Canada / 사진 출처 : Library and Archives Canada

 

 

 

당시 춘천에 주둔하던 한국군 6사단이 중공군의 공세에 무너지며 중공군은 경춘가도를 통해 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서울을 세 번째로 공산권의 손에 넘겨주게 될지도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중공군의 엄청난 물량 공세를 막는 임무는 제27영연방여단에게 주어졌다. 캐나다의 PPCLI, 영국의 제1미들섹스대대, 호주의 왕실 제3대대, 그리고 뉴질랜드의 제 16포병연대 등이 모인 이들은 가평에서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만나 3일간 밤낮없이 싸웠고, 놀랍게도 5배가 넘는 적을 격퇴하면서 중공군의 서울로의 진공을 막아내고 서울사수의 결정적인 전과를 세웠다.

특히 이 전투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것은 알버타와 매니토바를 근거로 결성된 캐나다의 PPCLI대대였다. 이들은 667고지에 주둔하면서 이 부대는 10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입는 피해를 입으면서도 뉴질랜드 포병연대의 포격과 함께 고지를 사수하면서 전투의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이들은 중공군이 몰려오자 뉴질랜드 포병연대에 자신들의 머리 위로 포격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는 대담성을 발휘했다. 자신들도 포격에 희생될 수 있겠지만, 참호 속에 있는 자신들보다는 노출된 중공군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판단 덕이었다. 이 공로로 부대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훈장(Presidential Unit Citation)을 수여받기도 했다.

 

가평 전투에서 캐나다와 뉴질랜드군에 의해 큰 좌절을 겪은 중공군은 이후 더 이상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지 못하고 38선까지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캐나다는 한국전쟁 전반에 걸쳐 총 2만6,791명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총 8척의 구축함과 공군 수송기 부대 등을 파병했다. 캐나다군의 참전 규모는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 규모이며 사망자 516명, 부상자 1,212명에 실종 1명, 포로 32명으로 총 1,761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이는 미국, 영국, 터키에 이어 파병국 중 4번째 규모다. 이들 중 378명의 유해가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Canadian troops take cover during an attack on a Chinese-held hill during the Korean War Oct.151952 / 사진 출처 : Library and Archives Canada

 

 

 

캐나다 육군은 가평전투 외에도 자일리 전투, 코맨도 작전(Operation Commando), 페퍼포트(Pepperpot)작전, 227고지 및 355고지 전투,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작전, 고왕산 전투, 나부리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 수호에 이바지했다. 캐나다 해군은 미 병력수송선 엄호를 시작으로 주로 서해안에서 적 해안 봉쇄 및 해안진지 포격, 도서 지역 방어, 항공모함 호위, 유격대 활동 지원, 도서주민 구호활동 등을 전개하면서 동해안의 열차 포격작전 등에도 투입되었다. 캐나다 공군은 1950년 6월 참전, 1954년 6월까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600회의 왕복 수송작전을 통해 1만3000명의 병력과 3백만kg의 전쟁 물자 및 우편을 손실 없이 수송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2015년 편찬한 ‘캐나다∙호주∙뉴질랜드 6·25전쟁 참전사’에 따르면 캐나다군은 자유와 평화수호의 십자군으로 이역만리 대한민국의 전장에 뛰어들어 생소한 기후풍토에 시달리면서도 용전분투했으며,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공산 침략을 저지하고 전쟁 전의 현상을 회복한 상태에서 휴전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캐나다군과 정부는 전쟁기간 중 난민 구호는 물론이고 전후 복구 과정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중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한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가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인연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캐나다를 최우선 수교 대상국으로 지정했고 1963년에 수교를 맺어 현재에 이른다.

 

또 캐나다 정부 역시 지난 2013년 한국전쟁 정전 기념일인 7월 27일을 ‘한국전 참전 용사의 날(영어: Korean War Veterans Day)’로 제정하고 이에 따른 기념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의 날’은 한국계인 연아 마틴 연방상원의원의 주도로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제정됐다.

 

HMCS Iroquois crew members ready at their gun off the coast of Korea / 사진 출처 : Library and Archives Canada

 

 

 

디스타임 김재현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