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인터뷰

[특별기획]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랭(Claude Charland)’ 씨를 만나다.(5) [July 30, 2020]

 
참전용사 ‘클로드 샤를랭(Claude Charland)’ 씨를 만나다.(5)
 
 

클로드 샤를랭(Claude Charland) 씨는 캐나다 왕립 22연대 2대대 B(baker)중대 5소대 소대장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캐나다 왕립 22연대(Royal 22nd Regiment)는 캐나다인들 중에서도 프랑스어 사용자 위주로 구성된 연대로 Van-doos(불어로 숫자 22를 뜻하는 ‘vingt-deux’에서 온 것)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샤를랭 씨가 속한 22연대 2대대는 1951년 8월, 속칭 더크 작전과 클레이모어 작전으로 불리는 임진강 서안 근처 정찰전 및 방어/수복 작전을 감행했다. 이들이 속한 영 연방사단은 같은 해 10월 미 제1기병사단으로부터 연천 북쪽 고왕산, 사미천 일대의 제임스타운 지역의 방어 임무를 인수한 뒤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제임스타운선’(임진강-고왕산-불모고지-백마고지를 연결하는 선)을 사수했다. 샤를랭 씨가 보병소대장으로 부임한 것도 이 무렵이다. 2년 가까이 이 지역에 주둔한 캐나다 왕립 22연대 장병을 비롯한 영 연방사단 장병들은 이 지역을 ‘My home’이라 부르며 친근히 여겼다고 한다.

샤를랭 씨는 한국전 정전 이후에도 캐나다군에 남아 복무하다 1982년 대령으로 은퇴했다.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섰던 클로드 샤를랭 씨 모습 / 사진 출처 : Canadian Army

디스타임 기자 : 입대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클로드 샤를랭(이하 샤를랭) : 당시에는 전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에 다닐 당시 캐나다 학군단(Canadian Officer Training Corps)에 가입했고 1950년 여름에만 해도 학생 신분으로 군사훈련을 받았죠.

 

디스타임 기자 :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샤를랭 : 1951년 5월 몬트리올 대학에서 노사관계학과를 졸업한 뒤, 저는 학군단에 이어 계속 군 경력을 쌓기로 결심하고 1951년 10월 입대했습니다. 저는 같은 해 11월 초에 보병 소대장으로 한국에 보내졌죠.

 

(다음 주에 계속)

디스타임 김재현 리포터

 

 


 

더크 작전 및 클레이모어 작전

 

더크작전

 

1951년 8월 왕립 캐나다연대 제2대대는 부대대장 리스고(C.H. Lithgow) 소령의 지휘 아래 대대를 임진강 서쪽으로 도하시켰다.  13일 하루 먼저 임진강을 넘은 A 중대는 131고지를 점령해 교두보를 확보했고, B・C・D 중대는 8월 14일 임진강을 도하한 후 중대별로 기동했다. 3개 중대는 앞서 A 중대가 점령한 131고지를 넘어 187고지 전방 2㎞ 지역까지 진출했다.

 

C 중대는 8월 15일 아침 6시에 가장 먼저 187고지를 공격해 약 1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일시적으로 적을 제압했지만 적의 박격포 및 기관총 사격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C중대는 적군 9명을 사살하고 자동화기도 다수 노획하였으나 중대원 2명이 부상했다.

 

B 중대는 C 중대가 출발한 직후에 152고지를 목표로 출발했으나 역시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정오가 지날 무렵에는 공격을 재개했으나 적의 박격포 공격에 피해가 급증해 철수했다.

 

 

클레이모어 작전

 

8월 22일부터 왕립 22연대 2대대는 캐나다 패트리샤 공주 경보병연대 제2대대와 합동으로 정찰전을 전개했다. 임진강 중류 진상리에서 도하하여 임진강 서안의 광범위한 지역을 정찰하는 작전이었다. 캐나다 경보병연대 제2대대는 앞서 더크(Dirk)작전을 전개할 때 왕립 캐나다연대 제2대대가 정찰한 152고지-187고지를 경유하여 23일 최종 목표인 210고지 일대를 정찰했다. 24일부터는 역시 왕립 캐나다연대 제2대대가 철수할 때 이용했던 통로를 따라 정찰하면서 남쪽으로 복귀했다.

 

왕립 22연대 제2대대는 158고지를 통과한 후 캐나다 경보병연대 제2대대와 나뉘어 서북쪽으로 기동하며 23일에는 222고지 부근을 정찰했다. 24일 최종목표인 208고지 일대를 정찰한 후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로 되돌아왔다.

 

 

이 작전에서 캐나다 대대의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적군 50여 명을 살상하고 주요 문서를 노획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