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인터뷰

한국전 승리의 숨은 주역, 캐나다 해군의 로버트 오릭씨(11)

 
 
한국전 승리의 숨은 주역, 캐나다 해군의 로버트 오릭씨(11)

 

 

 

로버트 오릭(Robert Orrick) 씨는 한국전 발발 당시 한국에 가장 처음 보내진 3척의 구축함 중 하나인 에서베스칸(Athabaskan) 호에서 통신병(일병)으로 근무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같은 한국전 참전 구축함 중 하나인 카유가(Cayuga) 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캐나다 해군 출신이다.

 

캐나다 해군은 기간에 따라 주로 구축함 1척~3척 정도가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활약했다. 캐나다 육군의 전공에 가려 주목받아오진 못했지만 이들은 주로 서해안에서 적 해안 봉쇄 및 해안진지 포격, 도서 지역 방어 등의 활동을 했으며 동해안에서는 열차 포격 작전 등에도 투입됐다. 또 한국전 공세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 당시 적을 교란하기 위해 함께 행해진 원산장륙작전 등을 지원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한국전 이후에도 1975년까지 캐나다 해군에 남았던 그는 이후 신문기자,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정부 내각 보좌관, 무역업,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과외교사 등으로 활동하다 2005년 은퇴해 안락하게 살고 있다.

 


 

 

2018년 7월 27일 정병원 당시 벤쿠버 총영사로 부터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는 로버트 오릭 씨 / 사진 출처 : 로버트 오릭

 

 

 

 

디스타임 기자 : 입대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로버트 오릭(이하 오릭) : 한국전에 참전하기 전까지 저는 BC주 빅토리아에 있는 에스퀴말트(Esquimalt)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디스타임 기자 :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릭 : 당시 해군이셨던 아버지께서 복무한 카유가 호는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구축함 3척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동경해 같은 길을 가고 싶었지요. 게다가 공산주의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디스타임 김재현 리포터

 

 


 

 

캐나다 해군의 한국전 참전사 

 

 

초기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 함대는 카유가(Cayuga)호와 에서베스칸(Athabaskan)호 및 수(Sioux)호로 편성되었다. 그들은 카유가호 함장 브록(J.V. Brock) 대령의 지휘하에 1950년 7월 5일 에스콰이몰트항을 출발, 7월 30일 일본 사세보항에 도착해 미 극동해군사령부 사령관 터너 조이(C.rner Joy) 제독의 작전 지휘를 받았다.

 

당시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병력과 전쟁 물자를 신속하게 지원하는 문제가 주요 관건이었다. 캐나다 구축함대는 도착 당일부터 서해안 봉쇄전대(TG-95.1)에 배속돼 곧바로 작전해역으로 항진했다.

 

9월 초에 접어들어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캐나다 구축함들은 집결해 함께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캐나다 구축함대에 부여된 임무는 유엔군 수송선단을 호위하거나 적의 해상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북위 35도 45분과 36도 45분 사이 서해상을 순항하는 것이었다

 

10월 중순, 에서베스칸 호는 함포지원전대(Gun Fire Support Group)의 일원으로 원산상륙작전에 투입돼 귀한 전투경험을 쌓았다.

 

1951년 4월 초부터 그동안 서해안 봉쇄전대로 작전을 수행하던 함정들이 동해안으로 이동하여 작전에 투입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4월 8일 캐나다 해군 에서베스칸호와 휴런호는 서해안 항공모함분대(TE-95.12) 소속의 영국 테세우스호와 미국 바타안(Bataan)호를 호위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이들과 함께 원산에 도착했다.

 

영국과 미국의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전개된 해상 및 공중 작전은3일 동안 계속되었다.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해군 폭격기들이 원산 시내를 폭격했다. 그때 캐나다 해군의 에서베스칸호와 휴런호는 유엔 구축함 4척과 함께 원산 시내 주요 목표물을 포격함으로써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1952년 10월 2일에는 이로쿼이 호와 마시 호가 철로 포격 작전을 전담하게 되었다. 제77기동부대가 급유 문제로 폭격기를 출격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시호는 오전에 성진항으로 출항하여 함포사격을 실시한 후 적진지로부터 세 차례 대응 포격을 받고 철수했다. 오후에는 이로쿼이 호가 성진 항에 접근하여 함포사격을 실시했다.

 

이렇듯 캐나다 해군은 미 병력수송선 엄호를 시작으로 주로 서해안에서 적 해안 봉쇄 및 해안진지 포격, 도서 지역 방어, 항공모함 호위, 유격대 활동 지원, 도서주민 구호활동 등을 전개하면서 동해안의 열차 포격작전 등에도 투입돼 육군을 지원하고 한국전 승리의 또 다른 주역으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