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인터뷰

한국전 승리의 숨은 주역, 캐나다 해군의 로버트 오릭 씨(12)

디스타임 기자 : 전쟁 당시 직책과 계급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릭 : 저는 주로 깃발 신호를 담당하는 통신병이었고 계급은 일병이었습니다. 5개월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후 1년간 통신병 교육을 이수했죠

 

디스타임 기자 : 전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요

 

오릭 : 유엔 함대의 일원으로 캐나다 해군함들은 다양한 임무에 참가했습니다. 몇몇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몇몇은 그렇지 못했죠. 영국이나 호주, 미국의 항공모함들을 서해에서 호위하기도 했는데 매우 지루한 일이었어요. 특히 우린 적의 잠수함으로부터 항모를 지켜야 했는데, 적들에겐 잠수함이 없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죠.

 

서해의 초도나 석도(현재 북한 지역) 등 섬지역을 순찰하는 임무도 있었죠. 두 섬은 UN군에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들이라 적들이 상륙하지 못 하도록 순찰해야 했죠. 겨울이 오면 섬 주변에 얼음이 얼었고 적들은 고무보트 등을 얼음에 숨겨 상륙을 시도하기도 했어요. 그들을 막기 위해서 보포스 40mm포를 주로 사용했지만 4인치 함포를 쓸 때도 있었죠. 한국 해병들이 적들의 중요 인물을 납치한 뒤 퇴각할 때 함포사격으로 그들을 지원하기도 했고 임무 중 부상당한 한국군에 의무지원도 했죠.

 

가장 두려운 위협은 기뢰들이었어요. 2차세계대전 때 러시아가 쓰던 건데 중공군이나 북한군들이 항구 주변에 설치했죠. 레이더에도 나타나지 않고 발견하기 어려웠어요.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500파운드짜리 악마들을 찾으려 노력했죠

 

한국전 당시 로버트 오릭씨가 근무하던 구축함 아사바스칸호 / 사진 출처 : thememoryproject.com

 

디스타임 기자 : 한국전 참전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와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오릭 : 25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1974년 8월쯤 해군에서 제대했어요. 그리고 빅토리아를 떠나 밴쿠버 아일랜드에 정착했죠. 잠깐 신문기자 일을 하다가 BC주 정부의 내각보좌관 일을 7년간 했죠.

 

이후 내 사업을 차렸다가 국제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여성을 만나 동업을 했다가 한때 크게 망했어요.

 

이후에도 무역업에 손을 댔다가 120유닛 짜리 임대 아파트 관리일도 하기도 하다 제 아내의 동료로부터 갓 캐나다에 온 15세 아이의 영어 강사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한 명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2명, 4명이 되더니 나중엔 30명이나 되는 학생을 1:1로 가르치게 됐어요. 이 일을 12년이나 하다 아내와 함께 은퇴했습니다.

 

1983년 9월, 아직 BC주 정부 보좌관 일을 하고 있을 때 한국전 참전 동료를 만나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회에 가입했습니다. 저는 리치몬드에 있는 Unit 47의 대외 홍보 담당자가 됐고, 연이 닿아서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회 전체의 대외 홍보 담당자로 근무하면서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 대해 일반대중 및 연방정부 인사들에게 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온타리오주 런던의 샘 카(Sam Carr)씨와 함께 1991년 한국에서 열린 한국전 4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캐나다는 물론, 한국전에 참전한 21개 UN 회원국 전체를 대표해 연설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디스타임 기자 : 한국에 재방문할 기회가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그때 얘기를 들려주세요

 

오릭 : 한국전 동안 제가 발을 디뎌본 한국땅은 초도와 석도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현재는 모두 북한 땅이죠. 그래서 한국전 당시 한반도 본토가 어땠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국을 재방문했을 때, 저는 한국인들이 짧은 시간 만에 제가 글로만 읽어봤던 한국전의 잔해에서 일어나 전 세계의 중심국가 중 하나로 우뚝 선 것을 보고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 대해 놀라고 감격했습니다. 저는 한국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해주는 국가로 바뀐 유일한 국가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자랑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디스타임 기자 : 한국 정부가 최근 코로나-19사태를 맞아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냈다고 하던데요

 

오릭 : 네 마스크를 받았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한국전에 참전한 21개 UN 회원국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우리가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디스타임 기자 : 최근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이나 조언이 있으시다면?

 

오릭 : 최근 한 영국인이 북한의 허락을 받고 북한을 여행하는 내용의 tv프로그램을 본적이 있습니다. 북한의 수도(평양)는 첨단 도시 같았지만 시골 농장에선 기게 없이 손으로 일을 하고 있더군요. 북한 주민들이 김씨 일가의 노예처럼 지내며, 그들을 숭배하도록 세뇌돼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북한이 망하고 두 나라가 하나가 돼도, 북한의 낙후된 경제를 살리고 북한 주민들의 세뇌를 푸는데 남한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고, 남한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일단 김씨 일가를 제거해야 통일과 관련된 일들을 시작할 수 있겠죠

 

디스타임 김재현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