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인터뷰

한국전 당시 헌병으로 근무하셨던 프랭크 스미스 씨(13)

 

 

 

한국전 당시 헌병으로 근무하셨던 프랭크 스미스 씨(13)

 

 

 

프랭크 스미스 씨는 한국전 당시 헌병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전 정전의 순간을 맞이했다. 한국전이 종전된 이후에도 스미스 씨는 한국에 남아 헌병으로 계속 근무하며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했다. 스미스 씨는 평화유지 활동 이외에도 전쟁고아, 미망인등을 돌보는 등 구호 활동에도 동참했다. 토론토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탁해 옷이나 장난감 등을 공수해 고아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을 정도였다.

 

흔히 한국전 정전과 함께 참전 군인들이 다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지만, 스미스 씨처럼 종전 후에도 남아서 평화유지를 위해 활약하거나 의료 봉사활동 등을 한 많은 캐나다군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활약이 정전 후 평화 유지 및 전후 복구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중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한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가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처럼 캐나다와 대한민국은 6・25전쟁을 통해 혈맹의 우호 관계를 구축했고, 이를 토대로 1963년 1월 14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 오늘날까지 우호 협력을 통해 양국의 국가이익 증진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평화와 협력의 바탕이 되고 있다.

 

스미스 씨는 이후에도 이집트, 사이프러스, 레바논, 이스라엘 등 국제 분쟁이 일어난 지역을 돌아다니며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2018년 한국 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영국의 전우 브라이언 패리트 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스미스 씨(우) / 사진 제공 : Frank smyth

 

디스타임 기자 : 입대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프랭크 스미스(이하 스미스) 씨 : 1950년 한국전 발발 당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제 17세 생일이 지나고 두 주만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아직 성인이 아니어서 부모님들께서 입대 서류에 사인해 주셔야 했죠

디스타임 기자 :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스미스 : 제 친구가 한국을 위해 자원입대했기 때문에 저도 같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가 어려서 두 번이나 입영장에서 되돌려 보내졌죠

 

(다음 주에 계속)

디스타임 김재현 리포터

 

 


 

 

한국전 종전 후에도 이어진 캐나다군의 활동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캐나다 제25여단은 28일부터 제임스타운 선에서 철수했다. 31일까지는 2㎞ 남쪽 캔자스 선상의 방어진지로 완전히 이동했다. 그 후 캐나다 경보병연대 제3대대가 1년간 임무를 완수하고 10월 29일 귀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캐나다 블랙워치(The Black Watch)연대 제2대대가 1953년 10월 29일 경보병연대 제3대대와 교대하여 진지를 인수했다. 1954년 3월 하순에는 왕립 캐나다연대 제3대대가 1년 복무를 마치고 개선하자 퀸즈 오운 라이플(Queen’s Own Rifles) 연대 제2대대가 임무를 대신했다.

 

이어서 4월 중순에는 왕립22연대 제3대대가 개선함에 따라 그 임무를 캐나디안 가드(Canadian Guards)연대 제4대대가 승계했다. 그 밖에 전차대대를 비롯한 포병연대 등 각종 지원부대들도 각각 임무를 교대하고 개선했다. 이어 6월에는 캐나다 제25여단장 알라드(J.V. Allard) 준장이 귀국하자 후임으로 클리프트(F.A. Clift) 준장이 부임하여 휴전 이후 전면 교체된 캐나다 제25여단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 후 1954년 9월 13일 랄프 캠페니(Ralph Campney) 캐나다 국무장관이 한국 주둔군의 감축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이후부터 캐나다 제25여단의 부분적인 철군이 시작되었다. 제25여단은 1954년 11월 8일 캔자스 선상의 방어진지를 국군 제28사단에게 인계하고 귀국 준비를 갖추었다.

 

11월 하순에 블랙워치 연대 제2대대와 캐나디안 가드연대 제4대대가 본국으로 개선하고, 1954년 12월 2일 마침내 캐나다 제25여단 사령부를 해체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에는 퀸즈 오운 라이플연대 제2대대와 제3야전 엠블란스 부대가 잔류하게 되었다. 이들 부대는 영국군 제29여단이 개칭한 영연방 사단사령부에 다른 영연방 부대들과 함께 소속되었다. 이어 퀸즈 오운 라이플연대 제2대대가 1955년 4월에 철수하자 5월 말경에는 제3야전엠블란스부대와 이를 지원하는 통신 및 행정요원 등 500여 명이 잔류하게 되었다. 그 후 점진적으로 감축되다가 전쟁 발발 7주년이 되는 1957년 6월 25일 의무 요원 40명을 마지막으로 철수시킴으로써 한국 전선에서 캐나다군은 모두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