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인터뷰

한국전 당시 헌병으로 근무하셨던 프랭크 스미스 씨(14)

 

 

 

6.25전쟁 당시 토론토의 가족들이 보내준 옷과 장난감을 아이에게 전달하고 있는 스미스씨 / 사진 제공 : Frank smyth

 

 

디스타임 기자 : 전쟁 당시 직책과 계급은 무엇이었습니까?

 

스미스 : 저는 비무장지대에 있는 헌병 부대의 준상병이었습니다.

 

디스타임 기자 : 한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 얘기를 들려주세요

 

스미스 : 한국에서의 기억은 폐허가 된 나라, 부서진 다리. 그리고 난민들과 고아들이었습니다. 쓰레기 차를 비우는데 배고픈 할머니들과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너무 빨리 달려와 깔리지 않도록 경계근무를 서던 게 가장 슬픈 기억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굶주려서 쓰레기를 비우기도 전에 달려와 부딪히거나 쓰레기에 깔려 다치고 죽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총을 겨누며 사람들을 쓰레기차에서 떼놓아야 했죠. 저도 노동계급에서 자라났지만, 그런 빈곤함과 굶주린 사람들을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어머니와 누이들, 그리고 내 가족들은 아이들 옷과 장난감을 담아 저에게 정기적으로 보내줬어요. 그러면 저는 마을로 내려가서 저의 작은 ‘산타클로스’활동을 했죠. 아이들이 작은 티셔츠와 스웨터를 입고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건 참 멋진 일이었어요.

 

우린 아무것도 함부로 내다 버리지 않았습니다. 군용 식량을 받아들면, 예를 들어 그 중에 리마콩 스튜 같은 건 아마 기자님도 좋아하지 않으실걸요? 그러면 또 어때요. 누군가는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우리는 그런걸 남겨뒀다가 마을에 가서 나눠줬죠. 물론 군율에 다르면 그러면 안됐던 거지만….

 

디스타임 기자 : 전쟁 중에 다른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요?

 

스미스 : 정전 협상을 앞두고 있던 때의 일입니다. 정전 협상 전 전투 중단은 90일마다 재연장됐는데 항상 끝나는 시간이 한밤중이었어요. 그 때마다 협상이 결렬돼 전쟁이 다시 시작될까봐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한번은 중공군이 비무장지대를 넘어 다시 침공할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고 우리는 그 맞은편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속칭 “벌래 구멍 나오기(bug out : 적의 공격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후퇴)”라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고 헌병으로서 저는 마지막에 남아 교통통제를 하며 차량들이 고장 나거나 뒤에 남는 일 없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해야 했어요. 1,200명 정도 되는 인원을 철수키는 와중에 저와 파트너는 밤이라 더 잘 들리는 중공군의 탱크 소리와 대화 소리를 들으며 신경이 곤두서 있었죠.

 

마지막으로 후퇴하다가 그만 제 파트너가 차를 잘못 몰아서 길을 벗어났어요. 다시 길을 찾아가는데 한 12시 5분쯤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중공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리를 12시에 부수기로 돼 있었죠. 저와 파트너는 “다리를 날려버리지 마! 다리를 날려버리지 마”하고 소리쳤어요. 다행히도 우리와 관계없이 상부에서 다리를 날려버리는 걸 멈추긴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강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무서웠던 순간이었죠.

 

디스타임 기자 : 한국전 참전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와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스미스 : 20년간 캐나다군에 복무했어요. 한국, 이집트, 사이프러스, 레바논, 이스라엘, 자메이카 등에서 복무했죠. 제대 후 25년간은 여러 종류의 치안유지요원(law enforcement)으로 복무하다가 사립탐정 회사를 차렸습니다.

 

디스타임 기자 : 한국 정부가 코로나-19사태를 맞아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냈다고 하던데요

 

스미스 : 코로나 방지 마스크는 아주 사려깊은 선물이었습니다.

 

디스타임 기자 : 최근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이나 조언이 있으시다면?

 

스미스 : 저는 북한이 파산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아주 강하고 방비가 엄중한국가이고요. 저는 한국군이 북한군에 비해 훈련이나 장비, 복무 태도 등에서 훨씩 우월한 집단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스타임 기자: 다른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스미스 : 저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캐나다와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사는 BC주 코퀴틀람에는 코리안타운이 있습니다. 아마 한국계 인구가 5만명은 되지 않을까요? 저와 아내 게일은 많은 한국인들의 행사에 초대받고 멋진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2018년 보훈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당시 모습 / 사진 제공 : Frank smyth

 

 

 

2018년 한국 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현충원을 찾아 전사한 동료들을 기리는 스미스씨 / 사진 제공 : Frank smyth

 

디스타임 김재현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