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가을 길 철학 어슬렁거리기(2)

서리가 내리고 쌀쌀한 날씨가 며칠 이어지기에 캘거리 겨울의 시작인가 보다 했더니 왠걸 최근 며칠은 따뜻한 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또 며칠 뒤면 다시 찬바람이 불겠지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행복하다. 따사로운 햇볕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 지는가 보다. 미국 대선 결과도 그렇고 한국의 정치 현실도 날씨만큼이나 예측이 어렵다. 인류가 뿌린 환경오염의 재앙으로 날씨는 이상기온에 변덕을 부리고, 정치는 정의가 사라져 상식과 순리가 통하지 않으니 세상 살아가기가 만만하지 않다. 어렵지만 이럴 때 일수록 현실을 직시하는 인식의 틀을 넓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1부에서 변증법적 인식을 살펴 보았고 이번에는 변증법적 인식을 현실 속에서 써 먹어보자!

우선 양비론과 흑백논리를 살펴보는데 써 먹어 보자!

이것도 문제 있고, 저것도 문제 있다는 양비론의 논리는 사실 말하고 있지만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 서로 문제가 있어서 어떻다고 하는 것인가? 그 대답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문제가 발생한 핵심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물어야 한다. 양 쪽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는 양비론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서로 싸우고 있는 현상만이 아니라 그 단초를 제기한 원인을 파악 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의 핵심고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거 아니면 저것이다라는 흑백논리는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검고 흰 것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스펙트럼을 외면하는 것이다. 반공 아니면 종북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통일도 있다. 통일에의 접근은 서로를 인정하고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다가온다. 민족적 통일성이 기반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은 새로운 차원의 합일을 창출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대결과 파국을 가져올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자. 이러한 인식의 확장이 철학의 진정한 의미다. 변증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해석하고 현실세계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다. 철학은 책 속의 글로 머물러서는 의미가 없다. 책을 박차고 나와 현실 속에서 꿈틀거려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며 양비론을 극복하는 것은 자신의 철학을 가질 때 의미가 있다. 그럼 자신부터 알아가 보자.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자

이 글이 철학산책이니 우선 존재란 뜻을 생각해보자. 존재라 하면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하는 것(존재자)과 존재하는 상태(존재)를 구분하였다. 예를 들자면 “핸드폰이 있다”에서 핸드폰은 존재자이고 “있다”는 존재이다. 당연한 말장난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만약 내가 눈을 감았다면, 그래서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면 핸드폰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닌가?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물론 지금 여기서 존재가 인식에 우선한다는 논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고 하겠지만 사물이 아닌 인간에게 적용하면 다른 의문이 발생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존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본질로서 존재하는 것과 실존이다. 그릇을 예를 들면 그릇은 무엇을 담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 기능이 그릇의 본질이다. 그런데 그릇이 깨지는 순간 그릇은 더 이상 그릇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적용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팔 다리가 부러졌다고, 눈이 실명되었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이 아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르트는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고 한 것이다. 단일하거나 고정된 본질을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은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슬슬 머리에 쥐가 난다. 그러니 그냥 뭔가 생각하고 있다면 인간으로 실존 한다고 생각하자. 그러니 넌 생각이 있니? 없니? 하는 말은 무지막지한 욕이다. 즉 넌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을 강제하는 요소들이 존재의 소중함을 훼손한다. 사회적 신분은 겉옷에 불과하며 본질적으로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당연한 말을 하는 이유는 국가는 국민, 사회는 사회인, 가족은 아들과 딸로, 종교는 피조물로, 도덕은 이성적 존재로 인간의 본질을 규정 짓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나의 본질이 아니며 외부적으로 나를 강제한 것에 불과하다. 모든 사회적 신분은 겉옷에 불과하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떠한 것으로 규정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실존하는 존재인 것이다.

철학의 산책은 스스로를 자각하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수시로 찾아오는 고뇌와 비애를 극복하기 위한 빛인 것이다. 존재에 대한 객체적 인식이 아니라 주체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주체성이란 철저한 자기 인식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창고로서가 아니라 인간존엄의 가치를 담고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함과 동시에 타자에 대한 존엄성도 깨달아야 한다. 사고하는 인간 모두가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