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판소리 이야기 5 – 심청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을 보면 ‘심청’이라 부르곤 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심청’이라 부르는 것 보다 그 앞에 ‘효녀’를 붙여 ‘효녀심청’이라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심청은  ‘효도’의 아이콘, ‘효녀’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는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중 한 곡 역시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담은 소리가 있다. 바로 판소리 ‘심청가’이다.

‘효’를 주제로 하는 심청가가 언제부터 판소리로 선보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순조 때 송만제가 쓴 <관우희>에 심청가의 내용이 있고, 일제강점기 때 정노식이 쓴 <조선 창극사>에 따르면 순조 때의 명창 방만춘이 당시에 많이 부르던 심청가를 다시 정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심청가는 춘향가 다음으로 사설의 문학성과 소리의 음악성이 뛰어나고 유명한 대목이 많아서 ‘작은 춘향가’라고 부르기도 하며 사설의 길이도 <춘향가> 다음으로 길어서 한바탕을 모두 부르는데 흔히 네 시간 가량 걸린다. 심청가를 줄거리와 가락의 짜임으로 나눠보면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심청이 태어나는 대목부터 심청 어머니 출상하는 대목까지이고 둘째 부분은 심봉사가 젖동냥하러 다니는 대목부터 몽은사 화주승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바치겠다고 하는 대목까지이다, 그리고 셋째 부분은 심청이 후원에서 기도하는 대목부터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까지, 넷째 부분은 심청이 용궁으로 들어가는 대목부터 황후가 되었으나 아버지를 만날 길이 없어서 탄식하는 대목까지, 다섯째 부분은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참여하려고 황성으로 가는 대목부터 눈을 뜨는 대목까지로 나눌 수 있다.

심청가는 ‘슬픈 소리’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심청가는 계면조의 소리가 많은데 계면조는 ‘계면(界面)’이라고도 하는데 이익의 『성호사설』에 보면 “계면이라는 것은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이 얼굴에 금을 긋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라는 설명이 있다. 즉, ‘계면’이라는 이름 안에도 ‘슬프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국창(國唱)으로 불리던 송만갑은 아내를 잃은 뒤부터는 심청가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슬픈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심청가를 더 이상 부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심청가는 슬픈 계면의 소리가 많고 아니리(판소리에서창을 하는 중간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엮어 나가는 사설)가 많지 않기 때문에 소리 공력이 없이는 심청가 한바탕을 이끌어 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역대 심청가를 잘 부른 명창으로는 순조 때의 명창인 김제철이 있고 철종 때의 명창인 박유전이 심청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박유전의 심청가는 이날치, 정재근을 거쳐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날치의 소리는 김채민과 박동실을 거쳐 한애순에게 전승됐고 정재근의 심청가는 정응민에 거쳐 정권진,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에게 전해지고 있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