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아리랑이 어떻게 ‘민족의 노래’가 되었을까?

지난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아리랑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아리랑이 어떻게, 왜? ‘민족의 노래’가 되었을까?

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일 먼저 ‘경복궁 중수 공사’를 들곤 한다 이 때 전국에서 모인 인부들이 지치고 힘들 때 자신의 지방에서 전해지는 아리랑을 불렀으며 그 아리랑들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토속민요 아라리’가 ‘시대의 노래 아리랑’으로 환골탈태 된 것이다.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과 1895년에 시작된 의병전쟁은 우리 민요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 하는 계기가 된다. 민요를 부르며 행군하고, 민요를 부르면서 선동하고, 민요로써 승리를 자랑했는데 이 때 많이 불렀던 노래 또한 ‘아리랑’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군들이 군가로 부르던 노래도 아리랑이었다. 이것을 <독립군 아리랑>이라고 하는데  <독립군 아리랑>의 내용은 왜적을 물리치고 조국을 되찾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 만주 등지로 떠나는 독립군 전사의 결의를 다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독립군 아리랑>을 공식 군가로 채택한 사람이 김구 선생이었다고 한다.

전시용어인 ‘음탄(音彈:소리로 만들어진 탄알)’은 한국전쟁 당시 아리랑을 수식하는 말이기도 했다.  1951년 1월 12일자 <조선일보>에는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었다.

“아리랑은 좋은 것, 효과 백 퍼센트” – 중부전선 854고지 대적방송의 음탄은 아리랑 –

아리랑이 전쟁의 심리전에 이용되었다는 것은 남과 북 군대가 모두 아리랑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아리랑이 ‘대동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아리랑은 한국전쟁에 참가한 유엔군 참전 병사들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으며 이렇게 해서 아리랑은 민족의 노래가 되었고, 한국인의 노래가 되었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