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본조’의 이름을 빼앗긴 아리랑, “구 아리랑”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리랑’… 이라고 하면 이 노래를 떠올릴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1865년, 서울에서는 경복궁 재건 공사가 시작되자 대규모의 목조건물 재건을 위해 많은목재가 서울로 수송되었는데 주된 생산지가 강원도 지방이었다고 한다. 목재들은 한강을 따라 서울까지 운송되었고 강원도 지방 중에서도 정선지방에서 주로 공급이 되었으며  운송을 담당한 인부들도 대부분 정선지역 사람들이었다.

옛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일노래’ 혹은 ‘노동요’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옛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을까? 지치지 않도록, 기운을 내기 위해 노래를 불렀고 커다란 나무를 들어 옮기거나 노를 젖는 등 협업을 할 때는 노래의 박자에 맞춰 움직여서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목재를 운송하던 이들 역시 정선지방의 민요를 불렀으며 이 중 정선지방의 아리랑이 서울에 알려졌고, 서울지방 사람들이 정선의 아리랑을 모방해서 부르게 된다.

이 노래가 바로 ‘구아리랑’이다. 즉, 구아리랑은 우리가 지금 흔히 부르고 있는 아리랑인 <본조아리랑>보다 휠씬 이전부터 부르던 아리랑인 것이다. 19세기말 선교사로 한국에 체류했던 Homer Bezaleel Hulbert(1863~1949)가 1896년 『korean Repository』에 <korean Vocal Music>으로 소개한 아리랑이 이 노래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음악은 자신의 변주곡으로 만들어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음악이 유행하게 되자 자주 불려지지 않게 되고 그 이름도 ‘구아리랑’이 돼 버린다. 영화 속 아리랑이 널리 유행하게 되면서 새로운 <아리랑>이 생기자 <구아리랑>이라 부르게 된 것인 것. 일반적으로 우리음악에서는 새로운 곡조가 생기면 원래의 음악을 ‘본조(本調)’라고 표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리랑은 자신의 뒤에 나온 아리랑에게 ‘본조’라는 이름까지도 내어 주게 된 것이다.

구아리랑은 한없이 느린 박자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요즘처럼 빠른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호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릿느릿 읊조리듯 불러 내려가는 구아리랑에 귀를 맡기다 보면 저절로 아리랑 속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한없이 편안하게 또한 한없이 애절하게….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