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판소리 이야기 7 – 적벽가

고종 때의 명창 장판개는 ‘천구성’, 즉, 하늘에서 내린 명창이 가져야 하는 최고의 음색을 가진, 타고난 소리꾼이었다. 특히 그는 최고의 높은 소리에서부터 가장 낮은 소리까지를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소리를 가지고 노는’ 명창, ‘듣는 사람의 혼을 빼 놓는 명창’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느 날 장판개는 어떤 양반의 생일잔치에 초대된다. 넓은 대청에는 점잖은 양반들이 쭉 둘러앉아 그의 적벽가를 감상했는데 조자룡이 현덕의 아들을 품에 안고 홀로 수많은 적군을 물리치는 ‘장판교 대전’ 대목에 이르자 양반들이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고 탄성을 연발했다고 한다. 체면을 중시하던 양반님네들도 벌떡 일어나게 하고 큰 소리로 추임새를 넣게 하는 것이 바로 판소리 ‘적벽가’인 것이다.

판소리 적벽가는 ‘삼국지연의’ 중 유비가 관운장, 장비와 함께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를 맺는 대목에서부터 삼고초려를 거쳐 적벽대전을 클라이맥스로 하고, 도망가는 조조를 관운장이 죽이지 않고 놓아주는 대목까지를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웅장하고 장엄하며 거센 표현이 많아서 예전에는 여자 명창들이 거의 부르지 않았다고 하며 관중 또한 주로 남성들이었다고 한다. 대원군은 한강 백사장에서 박기홍 명창의 적벽가에 혼을 빼앗겼고, 고종 황제는 ‘적벽강에 불 지르는 대목’을 들으며 좌불안석,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적벽가는 통성으로 지르는 호령조가 많고 일체의 잔재주도 부리지 않는 소리이다. 그래서 소리꾼의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고 내노라하는 명창들에게도 녹녹하지 않은 소리가 바로 이 적벽가이다. 언제가 판소리의 인간문화재 송순섭 명창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었는데, 적벽가의 일인자로 불리는 선생 또한 적벽가 한 바탕을 부르고 나면 온 몸에서 진이 다 빠져 나가는 듯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적벽가는 우리 소리꾼들의 창조 능력을 확인하게 해 주는 판소리이다. 적벽가의 백미, 최고의 대목으로 꼽히는 대목인 ‘군사설움(패배한 조조의 군사들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처자식을 그리는 대목)’과 ‘적벽강에 불지르는 대목’ 그리고 전쟁에서 죽은 원혼들이 새가 되어 조조 앞에 나타난다는 ‘새타령’, 도주하던 조조가 길옆의 장승에서 관우의 형상을 발견하고 놀라는 ‘장승타령’, 그리고 조조가 군사들의 숫자를 세 보는 ‘군사점고’등의 대목은 원전인 삼국지연의에는 없고 오직 판소리 적벽가에만 있다. 즉, 우리의 소리꾼들이 판소리로 전해지는 적벽가와 맥락이 통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판소리로 창작했고, 그 소리들이 오랜 세월을 지나 오늘날의 ‘판소리 적벽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서양의 음악은 작곡자가 있다. 하지만 우리음악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서양음악의 역사는 ‘작곡가의 역사’요 우리음악의 역사는 ‘명인, 명창들의 역사’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수십, 수백 명의 음악혼이 담겨 있고 세월과 함께 갈고 닦여 소나무처럼 든든한 음악, 그 것이 바로 우리음악이며 판소리…. 라는 생각이 든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