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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기/ UBC 교환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당시 국민학교 3학년, 한 여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보고, 4개의 현과 활 하나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소리에 이끌려 나도 연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후로 3년이 지난 중학교 1년에 바이올린을 시작할 수 가 있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했었던 6학년 때 였어요,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합창단에 변성기전이었던 터라 사정해서 다행히도 같이 할 수 가 있었는데, 화음을 이루어 내는 소리가 신기하였고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를 만들 수 있을 까?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 어머니께서 한자로 씌여진  작곡 교본을 구해서 뜻을 해석해 주셨고, 또한 화성공부를 스스로 하셔서 저를  가르쳐 주신 덕택에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음악대학에 입학한 1학년, 어떤 소녀가 ‘슬픈 노래’를 플라타너스 나뭇잎에 써서 주었는데, 그 느낌이 좋아서 곡을 붙여 당시 월간음악에 보내었는데 기쁘게도 이 달의 가곡란에 제 곡을 실었어요.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던 첫 곡 ‘슬픈 노래’가 제 작곡 1번이 된 연유입니다. 작곡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가 궁금한 마음에 응모했던 1983년 대구직할시 승격기념 작곡콩쿠르에서 금상을 타기도 했는데,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을 대중들도 같이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던 차에 익숙하고 친숙한 곡을 생각해 보니, 바로 민요와 동요이더군요. 단원들도 연주할 때 오는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에 즐거워 하더군요. 2010년에 있었던 이무지치 실내악단의 ‘까치 까치 설날은’을 비롯 지금 제 악보는 세계를 떠돌며 연주되고 있습니다.
악보를 거꾸로 보아도 음악이 되고,마치 컴퓨터로 작곡한 듯 맞아들어갈 뿐 아니라 음악성에 있어서도 뛰어난 바하를  존경하며,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에 아버지께서 만들어주셨던 조그만 모형의 유럽의 성, 그 창으로 새어나오던 불빛, 그 따뜻함이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 저에게 매달 25일은 크리스마스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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