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단가 사철가

겨울 내내 녹지 않는 눈, 내내 하얀 겨울을 바라 보면서 지난 여름의 뜨거웠던 태양과 반짝이던 호수, 그리고 온 세상이 노랗게 물들었던 가을을 떠올려본다. 계절은 이렇게 필름 돌아가듯 흘러 가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계절의 이치가 때로는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세월의 아쉬움을 노래한 단가 ‘사철가’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본다.

 

‘단가’는 본래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소리이다. 긴 이야기를 소리로 풀어내는 판소리에 비해 ‘짧은소리’라는 의미에서 ‘단가(短歌)’라는 이름이 붙었고, 소리꾼들이 긴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단가를 부른다. 목을 풀고 준비를 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단가는 대부분 우리장단 중 가장 편안한 장단인 ‘중모리(보통 빠르기)’로 돼 있고 소리를 쭉쭉 펴 내는 ‘우조’로 된 것이 많다.

 

단가 ‘사철가’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에 다른 단가들에 비해 한자가 그리 많지 않은 쉬운 가사로 돼 있고 계면조로 돼 있어 애절한 느낌이 들어서 수 많은 ‘단가’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노래이다.

단가 사철가의 내용을 살펴 보면… 아마도 이 단가의 배경은 봄인 듯 하다. 이 산 저 산 꽃이 핀 화창한 봄날이지만 노래 속 주인공은 세상사가 쓸쓸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물이 소생하는 풋풋한 봄날, 자신은 ‘백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청춘이 아니었던 사람이 있을까? 백발이 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노래 속 주인공은 청춘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나도 어제는 청춘”이었다며 한탄을 하고, 반대로 봄에게 “가려거든 가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청춘도 자신을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는데 매년 왔다가 가버리는 것을 알고 있는 봄, 너를 반긴들 무엇하냐는 대목은 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봄도 갔는데 여름이라고 마냥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 단풍이 피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落木寒天 :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 되고 백설만 펄펄 휘날려 은세계가 될 것이다. 노래 속 주인공은 아마도 겨울을 자신의 처지와 가장 비슷한 계절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월백 설백 천지백’ 즉, 달빛도, 눈빛도 온 세상도 모두 하얗다고 하면서  ‘모두가 백발의 멋이로구나’.. 라고 노래를 한다.

단가 사철가를 들으면 이 노래가 참으로 솔직한 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래 한 곡 속에서 주인공의 감정이 시시각각 변화를 하니 말이다. 처음에는 봄에게 “가려거든 가라”고 큰 소리를 치다가 나중에는 “세월아 가지말라”며 우겨보기도 하고 “가는 세월 어쩔거나” 하면서 체념을 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끝부분에서는 “마음 맞는 벗들과 한잔 술을 기울이며 세상 시름을 잊을 체 놀아 보자”며 노래를 맺는다.

 

오늘은 2017년 1월 11일, ‘월백설백천지백’.. 달빛도, 눈빛도 온 세상도 모두 하얗고 모두가 백발의 멋을 풍기는, 백발이 성성한 겨울이다. 하지만 곧 봄이 올 것이고, ‘봄이로구나…’ 하다 보면 녹음방초 승화시가 될 것이며 여름을 넘기고 나면 어김없이 황국단풍이 세상을 단장할 것이다. 그렇게 계절이 돌고 도는 동안 우리는 사철가를 몇 번이나 부르게 될까? 세월에게 배짱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과 은근히 타협을 하고, 또 체념을 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인생은 사철가처럼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