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채식주의자 2부 – 온실가스와 육식의 상관관계

필자가 어렸을 때 고기를 먹는 일은 거의 연례행사였다. 명절과 생일날 등 특별한 날의 특별한 음식이었다. 한국에서는 학교 급식에 매일 고기 종류가 바뀔 뿐 고기가 반찬으로 나온다고 한다. 지난 100여 년 사이 인류의 동물 단백질 소비량은 5배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는 한 달에 한 번 고기를 먹다가 매주 먹는다는 것이고, 일주일에 한 번 먹던 사람은 거의 매일 먹고 있다는 뜻이다.

신년새해 주유소를 찾은 많은 사람이 당황하였다. 생각보다 많이 오른 오일 값 때문이었다. OPEC의 감산 결정에다가 탄소세 부과까지 겹쳐 오일값이 상당히 급등해 우리 주머니 사정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과세정책으로서 탄소세는 최선의 정책인가?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삶을 윤택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자 다양한 통제방식을 구가한다. 국가기구, 즉 군대, 경찰 및 제반 행정기구를 통하거나, 당근과 채찍으로 통하는 과세정책, 교육을 통한 인식전환 통제, 언론을 통한 대중의식 주입 방식의 통제가 있다. 국민의 의식과 시대별 조건에 따라 국가는 적절한 통제방식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한다. 국민을 매번 섬긴다고 하지만 이 말은 선거 때만 듣는 선거용 뻥(전용용어)이다. 그 어떤 물리적 방법의 통제보다도 가장 상책은 교육을 통한 국민의 올바른 인식 함양이다. 따라서 탄소세라는 과세정책 또한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차선책일 뿐 최선책은 될 수 없다. 탄소세 시행 이전 선행되어야 할 것은 탄소세 필요성에 대한 사전 교육과 홍보가 아니라 탄소세를 시행하는 근본 이유인 지구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우선이다. 그렇기 위해서라면 온실가스의 주요 요인과 국민이 실생활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부터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책을 시행하고 결과를 따르라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부터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탄소세 시행의 찬반 여부와 상관없이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탄소세에 대한 논쟁은 글의 중심이 아님을 밝혀둔다.

 

육식은 필수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특별소비세를 낼 만큼 사치스러웠던 시기에서 이제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육식이 인류의 생활방식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육식주의자는 말할지 모른다. 환경보존을 위해 차를 안 사는 것이 올바른 대안이 아니고 오염을 발생시키는 가솔린 엔진을 전기 엔진이나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는 엔진으로 바꾸는 등의 노력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환경보존의 진정한 대안이다. 자동차를 사용해야만 하는 현대생활처럼 동물고기를 먹어야만 행복하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육식의 시작은 인간이 기아와 빙하기를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선택한 특별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현시대의 육식은 끊임없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생산되는 고기 소비의 창구에 불과하다. 건강한 음식 섭취가 아닌 길들여진 육식에 중독된 것뿐이다. 음식의 맛은 몸의 건강과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온실가스의 1등 주범은 자동차 배기가스가 아니라 축산업과 소의 가스(트림과 방귀)다.

2006년 유엔보고에 의하면 축산업은 자동차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고 한다. 소, 돼지, 닭과 같은 가금류 가축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전 세계 자동차가 내뿜는 탄소가스보다 더 많다는 사실은 많은 조사로 확인된 바이다. 물론 소가 직접 배출하는 가스뿐만 아니라 토지와 수질의 오염으로 인한 탄소배출까지 포함된 양이다. 또한, 목축업을 위해 삼림이 무차별적으로 훼손되고 있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의 삼림이 무참히 베어지거나 불타 없어지고 있다. 모자라는 가축을 기를 목초지를 위해 삼림이 희생되고 있다. 따라서 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 나무의 제거는 인간 스스로 자기 몸을 헤치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식탁에 오르는 고기는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산소의 재생산을 막는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위를 채우고 있다.

채식주의와 육식주의는 선택과 비교의 대상이 아니며, 하나의 이념도 아니기에 무슨 무슨 주의라는 것도 옳은 용어의 선택이 아니다.

채식선호자는 고기류를 피하고 식물성 음식 위주로 식생활을 하는 사람이며, 육식 선호자는 동물의 신체 일부를 먹는 것을 즐겨 하는 사람인 것이다. 육식주의라는 용어가 마치 육식을 하는 것이 이념적인 것으로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가치체계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특정 동물을 먹게 하려고 하는 보이지 않는 상업적 신념체계이다. 육식주의는 음식에 대한 폭력적 체계를 숨기려는 언어적 미화일 뿐이다.

인간이 육식하는 것이(동물을 먹는 것이) 자연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며, 생태계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 본성을 왜곡한 상업적 논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