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정악(正樂)

우리음악, 즉 국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 그리고 창작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 정악은 궁중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음악이고 민속악은 일반 서민들이 즐기던 음악이며 창작음악은 197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음악을 뜻한다.

‘정악’은 ‘바른 정(正)’에 ‘음악 악(樂)’, 즉 ‘바른 음악’이라는 뜻으로 고상하며 바르고 큰 음악이라 말 할 수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정악은 궁중에서 연주되던 음악을 비롯해서 민간 상류층에서 연주되던 음악이 있고 피리, 대금, 거문고, 가야금, 아쟁, 해금 등 우리악기가 총출동해서 서양의 오케스트라처럼 무대를 꽉 채워서 연주하는 합주곡(관현악곡)과 성악곡인 ‘가곡’, ‘가사’, ‘시조’, 그리고 실내악 규모의 작은 악기 편성인 ‘풍류음악’이 있다.

요즘은 국립국악원 예악당과 같은 공연장에서 정악을 감상할 수 있지만 예전에 정악이 연주되던 곳은 궁중이나 ‘풍류방’, 즉 ‘율방’이었다. ‘율방’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연주활동을 하던 곳으로, 성악가인 ‘가객(歌客)’과 기악곡에 뛰어난 거문고 연주자 ‘금객(琴客)’들이 함께 어울려서 풍류를 즐겼으며 조선 후기에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인들이 등장 하면서 풍류방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국악계 또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음악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임무이기도 한 국악계에서도 현대화, 세계화의 추세에 맞춰 창작음악, 퓨전음악, 세계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정악을 진득이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정악을 참 좋아한다. 한 곡을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30분 이상 계속되는 대곡들이 많고 템포도 느리지만, 음악에서 진득하게 배어 나오는 에너지와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유장(悠長)’한 가락을 사랑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음악을 계속 듣는 것이 지겹지도 않냐고… 물론 나도 공연 내내 눈을 초롱이며 음악에 빠져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더라도, 잠시 졸음의 유혹에 넘어간다 하더라고 음악은 흐르고 있고, 시작도 끝도 필요 없이 나는 다시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바로 이것이 정악의 멋이 아닐까? 전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서서히 젖어들게 하고, 마침내는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 그것이 정악의 멋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정악 전수를 위해 바친 어떤 명인은 정악을 들으면서 잠을 자는 사람이 정악을 가장 잘 감상하는 사람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씀을 하시곤 한다. 정악 만큼 편한 음악이 없다는 말씀일 것이다. 이것 또한 정악의 빼 놓을 수 없는 멋이라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만들어낸 것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병풍을 두른 산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우리를 감싸 안는 음악, 그것이 바로 ‘정악’이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