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안락사 3부 – 존엄한 죽음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행복

지난 크리스마스 휴가 때 토론토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딸이 놀러 왔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가 장기 기증이라는 표현을 쓰자, 딸이 장기 기증보다는 장기 나눔이 더 좋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딸의 지적에 나는 수긍하고 옳다고 하였다.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을 함께 나눔으로써 더 나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 더 바람직하겠는가? 생각을 바꾸고 내게 더 의미가 없는 나의 것을 나눔으로써 의미가 있게 하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한국에서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출생에 대한 원망을 가득 품은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그나마 죽음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고 있다. 물론 현재의 의학기술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고, 향후 획기적 의학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죽음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장기를 3D프린터를 이용하여 생산하게 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시점으로 본다면 조금 더 긴 삶을 살거나 연장할지 모르지만, 영생불사의 삶을 사는 호모 사피엔스는 아직까지 없다. 결국은 맞이해야 할 죽음을 행복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한자로는 安樂死, 영문으로는 Euthanasia로 표현된다. 한자의미는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을 뜻한다. 영문은 그리스 단어인 Eu(well)와 Thanatos(death)에서 왔다. 그러니 좋은 죽음을 뜻한다. 태어난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면 죽음은 선택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장기 나눔은 끝을 시작으로 바꾸어 준다. 아름다운 죽음과 생명 부활의 또 다른 길이다.

장기 기증이라는 표현이 최근 장기 나눔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생명의 한 부분을 기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일부를 나눔으로써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자신과 함께 사라져 버릴 생명체를 누군가와 나눔으로써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시혜를 베푸는 기증이 아니라 그 누구의 덕택으로 생명을 부여받으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나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안락사는 신체의 모든 기관이 정지된 이후가 아니기에 장기 나눔을 할 수 있다. 비록 자신은 죽음을 선택했지만, 장기 나눔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을 잉태한다. 물론 장기 나눔이 안락사 보다 선행(先行)의 문제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상황에서 장기 나눔은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60초의 고통과 공포, 14년의 고통과 공포

다시 영화 ‘청원’으로 돌아와서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자.
검사는 아들이 안락사를 도와달라고 하면 어머니가 돕겠는가? 라고 질문한다. 고통스러운 흐느낌 속에 어머니는 말한다. 도울 것이다. 더는 고통을 갖게 하고 싶지 않다. 인제 그만 아프기를 바랍니다. 사랑해! 나의 아들아!
그리고 판사는 마지막으로 주인공에게 발언의 기회를 준다. 주인공은 마술을 보여 주겠다고 판사의 허락을 요청한 후 한 사람이 겨울 들어갈 수 있는 나무 궤짝을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검사에게 자신의 마술에 협조해 달라고 부탁한다. 판사까지 협조를 부탁하자 검사는 마지못해 들어간다. 주인공은 마술의 신세계는 60초면 끝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궤짝 안으로 들어간 검사는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숨이 막힌다며 비명을 지르고 꺼내 달라고 한다. 60초가 되어도 어떠한 마술이 없자 판사는 검사를 꺼내 줄 것을 명령하며 이런 것이 마술이냐고 호통친다. 죽었다 살아난 듯이 큰 숨을 몰아쉬고 난 검사는 죽을 뻔했는데 이게 재미있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말한다. “나는 14년간 검사님이 경험한 60초의 고통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검사님은 지금 저의 삶을 60초간 체험했습니다.”
안락사의 악용될 우려는 절차의 보완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당사자가 겪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캐나다에서의 안락사 절차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캐나다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안락사를 신청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암, 다발성 경화증, 루게릭 병 등 회복 불가능한 상태의 환자들이 신청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정부도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병과 어느 정도 죽음을 예상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대법원은 조금 더 까다롭게 죽음에 예상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한, 미성년자는 할 수 없고, 장기적인 장애로도 할 수 없으며, 치매를 예견한 예약도 미리 할 수 없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안락사는 2명의 증인 앞에서 요청해야 하고, 의사나 간호사 2명에게서 동의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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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을 선택한 순간’의 저자 마리 두루베(Marie Deroubaix)는 프랑스인으로 신문기자, 디자이너,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56세에 폐암 판정을 받았다. 1년 4개월의 긴 투병생활을 한 그녀는 심신의 고통이 극에 다다르자 안락사를 택한다. 프랑스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벨기에로 가 약물투입의 적극적 안락사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그의 책에 프랑스의 반려동물 웹사이트에 있는 글을 인용하면서, “동물이 나이를 먹고 질병에 시달리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경우, 안타깝지만 안락사를 통한 이별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가장 행복한 상태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람들이 이처럼 기르던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면서 도대체 왜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그리고 차라리 한 마리 개가 되어 동정이라도 얻고 싶다며 그녀의 절박한 심정을 피력했다.
삶에는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수명이 늘어났으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수명연장이 아니라 숨만 쉬는 생명 연장은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존엄한 죽음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행복이라고 했다.”
내 삶의 행복과 내 죽음의 행복 모두 소중하다.

기발함과 감동이 함께 묻어나는 태국의 장기기증 광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 나눔 가계도 / 장기를 이식 받은 이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이런 연결고리들이 이어져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생명 나눔 가계도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