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우리악기 이야기 – 김영랑 편(2)

그 가슴을 퉁 하고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어라

바깥은 거친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양 꾸민 잔나비떼들이 쏘다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곳 몸둘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번 바뀌거늘

이 밤은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던 시인 김영랑. 그의 기린이 맘 놓고 울 수 있는 날은 바로 이리떼와 잔나비떼가 사라지고 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거문고의 음색처럼 당당히 울릴 수 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김영랑 시인은 3․1 운동 당시 강진에서 의거를 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를 거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매 단풍들것네”….라는 정감어린 표현을 남긴 김영랑시인은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민족적이라는 것 을 증명한 시인이다. 그리고 그는 ‘춘향’이라는 시도 썼는데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일제 강점기 국창으로 불리던 임방울의 ‘쑥대머리’, 즉 춘향이가 옥중에 갇혀 부르던 판소리 한 대목이 떠오른다. 임방울이 쑥대머리로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줬다면 김영랑은 이 시를 통해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의 지조를 대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영랑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와 문학, 그리고 문화와 예술에 담겨 있어야 할 정신과 혼에 대해 생각 해본다. 우리들 안에는 지금 무엇이 담겨 있을까?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 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 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house_of_kimyoungrang

(김영랑 생가)

 

박근희 (국악 칼럼리스트)

2008년 10월 월간 KBS 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