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산위의 사람들 – 2017년 로키 맑은물 신춘문예 수필 부문 가작

산위의 사람들 / 김미숙

 

거대한 암석의 장활한 파노라마, 로키 산맥을 뚫고 나오면 그 뒤에 고요한 천지가 펼쳐진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클라이맥스에서 이어주는 잔잔한 연주의 선율처럼 로키산맥의 끝자락은 드넓은 평지 속의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이어져 있다.

캐나다 앨버타 주 남부 지방 고원 지대의 로키 산맥으로부터 80km 떨어져 있는 곳에 도시가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넓은 길을 내어주며 동과 서를 잊는 교량 역할을 하는 그곳은 해발 1,000m 고원지대의 하늘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청정 지역 캘거리(Calgary)다.

캘거리라는 이름은 ‘목초지의 해변’이라는 의미로 스코틀랜드 게일어 ‘칼라 게아라이드’(Cala ghearraidh)에서 유래되어 맑은 물이 이르는 농장으로 풀이되기도 한다고 한다.

로키 산맥 기슭의 보우 강과 엘보 강이 만나 큰물을 이루는 이곳에 붙여 준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물 주변에는 늘 사람과 집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고 갖은 식물과 온갖 동물들의 서식지가 된다.

물은 모양도 형태도 없이 어느 곳이든 비껴가고 돌아가며 세차고도 잔잔히 어딘가를 향해 흘러간다.

물은 흘러갈수록 모자람 없이 주변을 더욱 푸르고 풍성하게 하며 물길이 닿는 모든 곳마다 생명을 주고 자신도 같이 살아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많은 골짜기의 물을 모은다고 하지만 이 높은 곳에서의 모인 물은 얼마나 반갑고도 신비로운 일인가.

과연 어디서 어떻게 이 많은 물이 흘러서 여기까지 왔을까.

무엇을 만나고 어디를 지나면서 깨끗하고 맑은 물이 되어 이곳에서 흐르고 있을까.

흐르는 물속에서 나를 만나고 높은 곳에 모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도시에서 살았다.

낯선 이의 눈에 바라다보이는 캘거리는 전에 맛보지 못한 신비함으로 가득 둘러싸여 있는 도시였다.

그 바람을 맞아 보았다.

한겨울 중심에도 어느 봄날을 선사해 주는 치누크(Chinook)는 신의 연출이 펼쳐지는 날이기도 했다.

찬 공기를 싸고도는 부드러운 바람은 영하 30도에서도 영상 20도로 올려주는 신비스런 바람이었다.

온 산의 눈은 무거운 옷을 벗고 길가에는 녹은 눈으로 실개천을 이루며 온갖 새들은 움츠렸던 날개에 기지개를 켰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로키 산맥을 매일 보고 사는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맑고 신선한 로키 산맥에서 무상으로 제공해 주는 공기를 매일 마시고 사는 특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이곳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맑으며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하늘과 가까이 마주하고 사는 산 위의 동네의 그 푸르른 빛깔은 수없이 다양하고 흰 구름 역시 속살을 비치듯 곱고 예쁘기만 하다.

넓은 하늘의 하얀 구름 떼들은 들판 위의 알버타 소 떼들처럼 모여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

겨울에는 한 번씩 흰 눈에 온 땅과 도시가 하얗게 뒤덮이고 또 다른 겨울왕국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눈 내리는 날이면 소금 대신 길가에 작은 자갈 돌멩이들을 뿌렸다.

처음 보는 이런 장면에 나는 고갯짓을 했지만, 그 작은 돌은 어디서든 날아와 달리는 차 앞 유리창에 흠집을 남겼고 기어코 금을 내는 선물을 안겨줬으니 비로소 캘거리인이 되었다는 환영식을 해준 듯했다.

이곳은 자동차 유리창에 금 간 거 쯤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금을 내고도 얼마든지 하이웨이를 내 달릴 수 있고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캘거리의 자동차들은 눈 오는 날에도 변함없이 달린다.

차선이 보이지도 않는 길을 직감으로 달리는 그들은 마치 로데오 선수들 같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눈 위를 달리는 법을 서서히 익혀 내며 눈길 위에서 서로에게 길을 내주기도 하고 또 길을 만들기도 하며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길 이름들이 사슴 발, 까마귀 발, 까마귀 아이들 인것을 보고 순수한 인상과 함께 처음 이 땅을 일구고 살던 주민들을 생각해 보게 했다.

뷰리풀 브리티시 콜롬비아 밴쿠버 촌놈인 나에게 캘거리의 첫인상은 로키의 거친 터프함과 광활한 대평지의 야생적 기질이 안겨주는 와일드한 로즈 자체였다.

 

기막힌 장면이 또 있었다.

눈길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카트를 끌고 장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카트를 끌어 보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끌어지지 않았고 카트 바퀴가 눈 속에 파묻혀 굴러가지 않았다.

굴욕스럽게 겨우 끌어다 주차장에 세워 놓고 왔던 힘든 장보기였다.

비가 자주 오는 따뜻한 밴쿠버의 장 보던 길이 오버랩 되었다.

빗물에 자주 씻겨 설거지해놓은 듯한 반짝이는 카트의 고마움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눈 오는 날이면 주차장에 주차선이 없이도 차들이 일렬로 줄지어 주차하는 이들의 모습에 감탄했고 겨울철 흙먼지로 뒤덮인 차를 타고 다니는 일은 더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길 가다가 눈길에 빠진 차를 발견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너 나 할 것 없이 도와주는 일은 이들만의 서로의 품앗이 같아 보였다.

 

이들은 알까.

마이너스 추위의 공기 속에서도 자신들이 숨을 쉴 줄 알며 찡하게 코끝을 타고 들어와 폐 속까지 깊이 파고드는 삶의 뛰는 맛을 마셔 본 자들인 것을, 한겨울에도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의 위대함과 고마움을 받아 본 자들인 것을, 어떠한 얼어붙은 캄캄한 밤을 지날지라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힘 있는 태양의 성실함을 지켜본 자들인 것을 말이다.

날마다 푸르른 하늘의 짙음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아침마다 마주하는 자신의 영혼을 말이다.

캘거리는 우로는 거대한 로키산맥을, 좌로는 아득히 넓고 광활한 평야를 양 날개처럼 펼치고 있다.

막힘이 없는 평지는 달리고 달려도 그 끝을 다 가볼 수 없고 사막의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기만 하다.

거친 들판은 알버타의 기상과 정신을 뿌리 깊게 새기고 있고, 그 길을 지날 때면 여전히 세월의 흔적과 자연의 숨 쉬는 야생 미를 그대로 내뿜으며 나약한 인생에는 힘을 주고 지친 나그네의 어깨에는 말없이 투박한 손을 얹어주었다.

 

1875년 캘거리는 북서 산악경찰 (NWMP)의 기지가 되었다고 했다.

예전부터 요새가 되어 출발한 자리 포트 캘거리, 이곳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풍부한 자원과 서부 대평원을 외부로부터 지켜내며 그 임명과 임무를 감당하고 있다.

아득히 넓고 광활한 들판과 드높은 산지는 알버타를 지키는 정신이 되어 대평원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보이는 길보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 멀리까지 펼치고 있는 땅 캘거리는 아직도 역사의 발자취와 지난날의 호흡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을 품은 땅이었다.

매년 여름이면 온 도시가 스템피드 축제의 열기로 하나가 되었다.

남서부의 대평지의 중심 이곳에서 온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종합 문화 축제를 펼치는 것이었다.

길거리는 서부식으로 꾸미고 주민들은 모두가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스템피드 퍼레이드를 이루는 재미나기도 색다르기도 한 풍경이었다.

집집마다 나눠주는 팬케이크는 후한 산동네 사람들의 인심을 나눠 주는 듯했다.

 

결혼 전 남편은 자신은 카우보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넓은 곳을 다니며 말을 타며 살 거라 했다.

나는 그 말에 속으로 웃었고 단지 문학적 표현이라 여겼다.

이곳에 온 어느 날 여기가 카우보이의 고장이며 스템피드의 무대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전율했다.

어쩌면 십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된 우리들의 행보는 마침내 이 땅에서 머물게 된 것 같았다.

 

어느새 굽이굽이 흐르는 맑은 물과 함께 나도 썩이어 흘러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산 위에서 아침을 맞고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강을 내려다본다.

석양의 노을빛을 받으며 피어있는 와일드 로즈처럼, 낮은 곳을 향하여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