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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전설 아놀드 파머, 87세를 일기로 영면

왕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5일(일) 암과 심장병으로 오랜 기간 투병 중이던 골프계의 전설 아놀드 파머가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들어 그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여러 번 넘어져서

다친 상태였다. 수많은 이들에게 사인을 해 주었던 그의 손은 계속 떨렸고 많은

찬사를 들었던 그의 귀는 일반 대화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올해 그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던 기회는 3월 중순에 열렸던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션

게임이었다. 4월에 열린 마스터스 대회에서 아놀드 파머는 오랜 라이벌인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이어와 함께 기념 시타를 더는 칠 수 없다고 선언했었다.

아놀드 파마가 있기 전에 골프 경기는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지도 않았고 일반인들에게

골프는 귀족 스포츠로 여겨져서 딴 세상 일로 간주되었었다. 니클라우스, 플레이어와

함께 골프계의 빅 스리(Big Three)로 불렸던 그는 이 라이벌 관계를 활용해서

텔레비전 중계를 이끌어 냈고 골프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중요한 부분이 되도록

만들었다. 21세기에 들어선 후에도 이 세 사람은 마스터스 대회의 수요일에 열리는

Par 3 경연대회에 여전히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평가에서 잭 니클라우스는 세 사람 중 최고라는 말을 항상 들었지만 아놀드

파머가 그의 호적수로 등장할 때까지는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아놀드

파머는 TV 연예 프로그램과 토크쇼에도 많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당시 조니 카슨이

진행하던 투나잇쇼에서 벌어졌던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카슨이 니클라우스의 첫

부인이었던 위니(Winnie)에게, 경기에 앞서서 하는 미신 같은 행동이 있냐고 질문을

하자, 그녀는 “네. 나는 그의 골프공(ball: ball은 남성의 고환을 의미하기도 함)에

키스해서 행운을 빌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카슨은 “그래서 그의 퍼터가 똑바로

서 있게 만드는군요”라고 재치있게 받았다.

그는 007 제임스 본드에게 쓰던 말조차 뺏어왔다. “여자들은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남자들은 그처럼 되기를 원한다.” 그는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인기가 있었다.

심지어 그는 1964년에 개봉한 007 골드핑거에 등장하기까지 했다. 1964년에 겨우

34살이었던 그는 1964년 마스터스에서 그의 통산 7개 메이저 대회 우승의 마지막을

장식한 상황이었다.

1929년에 펜실베이니아주 Latrobe Country Club의 잔디관리자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으나 장학금을 받고 Wake Forest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힘이 넘치면서 종종 “lean”하다고 표현되는 독특한 스윙을 구사했다. 대학교에

다니던 중 절친한 친구이자 팀 동료였던 Bud Worsham이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그는 대학을 떠나 해안경비대에 들어가서 3년을 보냈다. 그는 비행

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1956년에 비행조종사 자격증을 땄고 후에는 자신의

전용기를 50년 넘게 직접 조종하기도 했다. 1999년에 Latrobe의 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서 Arnold Palmer Regional Airport로 공항 이름을 바꿨다.

그는 1954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같은 해에 위니프레드 월저(Winnifred Walzer)와

결혼해서 그녀가 1999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45년을 함께 했다. 그는 2005년에

캐서린 고스롭(Kathleen Gawthrop)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파머의 첫 PGA 투어 우승은 1995년에 토론토의 Weston Golf and Country Club에서

열린 캐네디언 오픈(Canadian Open)에서 이뤄졌다. 그후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

95번이나 프로 게임에서 우승을 했다. 여기에는 네 번의 마스터스 대회와 두 번의 US

Open 대회를 포함한 62회의 PGA 투어 우승이 들어 있다. 그는 총상금 100만 불을

넘은 최초의 선수였고 53년간의 총상금이 1,861,857불이었지만, 사실 이 액수는

작년에 세계 랭킹 48위 선수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상금 액수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이 상금의 20배에 해당하는 수입을 은퇴 후에 벌어들였다. 그는 세계적인

스포츠 매니지 업체인 International Management Group(IMG)를 마크 맥코맥(Mark

McCormack)과 함께 세웠다. 맥코맥은 파머의 명성을 활용해서 골프 의류, 골프 코스

설계를 포함하여 파머의 이름이 들어가는 많은 사업을 벌였다. 심지어는 Arnold

Palmer라는 이름의 음료수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2004년에 미국 자유의 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2009년에는

미국 의회 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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