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소녀상을 만나러 가는 길

소녀상을 만나다

오늘(3월 16일)은 소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영원한 우리 마음의 소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소녀상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에서 내린 후 근처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에게 소녀상의 위치를 물으니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걸음을 한발 한발 옮기며 많은 생각이 중첩되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곳 광화문에서는 매주 촛불집회가 개최되었었다. 지금은 일상으로 되돌아가 평온하다. 그저 자신의 용무를 위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광화문은 역사의 한 장을 쓰는 의미심장한 곳이 되었다. 광화문 큰 거리를 뒤로하고 미 대사관을 지나 뒷길로 접어들어 안국역을 향하는 길로 갔다. 안국역 또한 며칠 전 대통령 탄핵으로 6차선 도로가 시민들에게 자리를 내준 곳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뉴스 건물이 보였고 조금 떨어진 일본 대사관 건물 건너편 도로에 소녀는 일본 대사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에 앉았던 나무의자와 같은 형상을 한 청동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소녀는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송과 사진으로만 보던 소녀상이었다. 소녀는 앉아 있었고, 누군가 다소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망토를 씌어 주었고 소녀는 또 하늘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 맨발이 안쓰러워 빨간색과 초록색이 담긴 따듯한 양말을 신겨주었다. 다소곳이 일본을 응시하듯 일본대사관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움켜쥔 주먹에서 안으로 삼킨 울분이 느껴졌다. 소녀상 앞에는 예쁘고 귀여운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하얗게 타고 남은 연탄재 위에는 한 송이 꽃이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글과 함께 놓여 있었다.

또한, 그 앞에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이 새겨진 가로세로 각 20cm의 청동판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이름 없는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를 기억하며”라는 글이 새겨진 청동판을 시작으로, 김학순, 김순덕, 강덕경, 배춘희, 백넙데기 등의 돌아가신 분들이 이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녀상의 뒤를 돌아보자 소녀상은 그림자도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 한복판에는 한 마리의 나비가 날아가고 있었다. 모든 오욕을 떨쳐버리고, 눈물도, 설움도 모두 내치고 훨훨 나비 짓 하며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대사관의 모습

소녀상 일본 대사관은 마침 공사 중이라 공사 가림막으로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또 그 앞에는 경찰버스가 호위하듯 둘러싸 있었고 주변에는 경찰들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경비를 서고 있었다. 아직도 보상하되 반성은 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의 간판 뒤에 숨어 있는 일본의 모습을 반영하듯 일본 대사관은 공사가림막 뒤에 꼭 숨어 있었다. 매번 당선되는 독일의 총리가 유대인 학살지역을 방문하여 사죄하는 모습이 과연 부끄러운 행위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감추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떳떳한 행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국격을 생각하게 한다. 소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는 ‘마루사’라는 일본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국세청 사찰부의 마루사 여성 조사관이 러브호텔 경영자를 탈세로 적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한다. 시카고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잘못을 바로잡는 집요한 과정이 그려졌다고 하는데 지난날 국가의 잘못도 인정하고 스스로 바로잡기를 바란다. 사죄는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와서 해야 진심 어린 속죄라고 생각한다.

 

1228회 23년 6개월을 넘긴 수요집회

매주 수요일 12시에는 소녀상 앞에서 수요집회가 열린다. 수요집회는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이다.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다.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린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은 연중 집회 참가 인원을 5만여 명으로 추산한다고 했다. 1992년 1월에 시작된 1228회차,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로는 세계 최장 기간 집회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이 기록은 매주 경신되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할머니 숫자는 238명이라고 한다. 피해자의 실질적인 숫자는 20만 여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입증할 자료가 없거나 당사자가 신고를 꺼려 그 숫자가 턱없이 적다고 한다. 신고하고 자신을 밝히신 분들이나 아직도 감추고 계신 분들의 아픔과 상처는 같다. 문제는 하루빨리 그 상처가 아물도록 국가가 나서야 하는데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국가 정략적인 타협만이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정부도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 등의 작품을 국가기록물로 지정 영구 보존하기로 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위안부 할머니와 국민의 희망과는 거리감이 있다. 하루빨리 그분들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도록 해결되어 더는 수요집회가 기록을 경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법 날씨가 쌀쌀한데 대학생인 듯한 두 여자 자원봉사자가 비닐로 만든 천막 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일본의 일부 극우세력을 추종하는 자들이 방한하여 가끔 소녀상을 훼손하거나 욕되게 하여 소녀상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선 봉사자들이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운동’ 용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서명부 맨 위에는 ‘세계가 요구한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사죄하고 법적 배상 하라’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나도 서명을 하고 모금을 위해 판매하고 있는 빼지를 하나에 3천 원에 팔고 있어 3개를 사고 만원을 모금 통에 넣었다.

소녀상 철거는 일본의 사죄와 배상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역사 앞에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나 피해국이 사죄를 요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감추어서 국가의 자존심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그 치부를 감추는 것은 자국민의 자존심을 멍들게 하며 안으로 썩게한다. 진정한 국격은 내가 내세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가 인정해야 한다. 일본 안에서도 양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자성의 소리가 있음을 안다. 국가지도자가 정치적 욕심으로 나라를 추락시키고 싶지 않다면 정의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소녀상 옆에 앉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며 디스타임 황문선 현장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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