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소득 재분배의 새로운 화두 기본소득 보장

기본소득보장 :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그냥 ‘물고기’를 줘라.”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주장이다. 즉 저소득층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돈 버는 방법이 아니라 물품을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현금이라는 것이다. 향후 수입의 불안정성이 소비를 불안하게 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보다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임시직 일자리에 목메게 하니 기본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 노동력의 낭비를 막고 생산력을 높여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가져올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시행하는 모든 사회보장제를 단순하게 말하면 돈을 풀어 소비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 수입의 불안정성은 돈을 쓰기보다 장롱 속에 보관하게 하고 있다.

제임스 퍼거슨 교수는 또한 기본소득제에 대해서 “일을 하든 안 하든, 소득이 많고 적든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으로 물질적 재화는 넘쳐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국가는 늘 고민한다. 제임스 퍼거슨 교수는 어차피 넘쳐나는 물고기를 갖고 물고기 잡는 법 가르친다고 고급인력, 즉 물고기 잡을 줄 아는 실업자만 양산하지 말고 창고(금고)에 쌓여 있는 물고기(돈)를 그냥 주자는 것이다. 괜히 이러저런 복지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인력낭비 돈 낭비하지 말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일할까? 지원금 받을까? 를 고민하게 하지 말자

거의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실업급여 또한 마찬가지다. 캐나다 알버타 주 역시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는데 최근 오일값의 하락으로 인한 실업률의 급증과 재취업의 어려움으로 기존보다 개월 수를 늘려서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고소득을 보장받고 있던 오일컴퍼니에서 일하던 기술자가 아닌 최저임금을 받던 저소득 노동자들은 어쩌정한 재취업은 오히려 실업급여나, 저소득지원금이 취소될 것을 우려하여 기피한다. 지원금보다 적거나 별 차이가 없는데 굳이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이러한 우려는 사라진다.

해외 기본소득 추진사례 도표를 살펴보면 이미 기본소득 지급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가 있고, 향후 추진하고자 계획 중인 나라도 있다.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 또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자 추진 중이지만 방법이 조금 다르게 수당이라는 개념으로 지급하려고 한다.

모든 사회복지 정책의 시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재원마련이다. 그리고 재원마련의 보고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가 아니라 부자들의 돈 창고일 수밖에 없다. 벌어들인 돈을 모두 세금으로 거둬간다면 누가 돈을 벌겠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수입 모두를 세금으로 거둔 적은 없다. 세금을 많이 거둬서 망했다는 기업도 부자도 없다. 탈루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것이 드러나서 거덜 난 기업이나 부자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려울지 모르지만, 불행한 사람이 없게 만들거나 최소화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잠시 이야기의 삐딱선을 타자. 최근 한국에서는 ‘역적 백성의 마음을 훔친 도적’이라는 홍길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화제라고 한다. 홍길동이 신출귀몰하던 시절에는 화폐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쌀이었다. 그런데 쌀은 여러 가지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일단 보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썩는다는 점과, 누가 얼만큼의 쌀을 보유하고 있는지 모두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의적들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자들의 재산은 타킷이 되었다. 그래서 의적들은 곡식 창고를 털어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부의 재분배를 국가가 하지 않으니 의적이 나선 것이다.

 

해커로 부활한 홍길동

최근 북한의 ‘레이저스’라는 해커 그룹이 전 세계 18개 국가의 은행을 해킹하여 돈을 빼내 핵 개발에 사용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오늘날 모든 자산 가치는 돈으로 환산된다. 먹을 수도 없고, 금처럼 다양한 용도에 사용할 수도 없지만 모든 사람의 동의로 실질적인 가치를 내포하지 않았음에도 화폐가 쓰여지고 있다. 인터넷 뱅킹, 모바일 뱅킹 등 첨단 결재시스템의 등장으로 오늘날에는 실제 유통되는 화폐는 현저히 감소하었다. 카드 사용마저도 감소하는 추세다. 핸드폰으로 주문하고 결재한다. 이제 돈은 숫자상으로만 존재한다. 은행계좌에 숫자만으로 존재한다.

 

오늘날 홍길동이 부활한다면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할 것인가?

정의로운 해커가 그 답이 될 것이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재산을 가진 전 세계 1% 부호들의 계좌를 누군가 해킹하여 전 세계 극빈층의 계좌로 입금해 준다면 그 해커는 21세기 백성의 마음을 훔친 도적이 되지 않을까? 조금 더 능력을 발휘하여 입금계좌는 추적이 불가능하게 하여 다시 환급되는 일이 없게 한다면 가난한 자의 행복이 오래 갈 것이다. 어찌 되었든 첨단 보완 시스템으로 무장하겠지만 결국 수십조의 돈을 찾아서 보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은행 계좌에 둘 수밖에 없다. 만약 의로운 해커가 지속해서 정기적으로 이러한 선행(?)을 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의 모델이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국가로부터는 아니지만 매달 기본 소득이 보장되는 사회, 세금으로 부의 재분배가 실현된다면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비정상적 방법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한다면 어떠한 문제가 도래할까? 혹시라도 돈은 축적의 대상이 아니라 분배의 대상이며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강제로나마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컴퓨터 공학박사인 지인의 말처럼 도덕의 붕괴와 사회 시스템의 붕괴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직면하게 될까? 근로 의욕과 복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본소득 보장을 어떠한 방법으로 실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까?

시대를 바꾼 산업혁명은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오늘날 조 단위의 부를 갖춘 부자들도 만들어냈다. 1조라는 돈은 지금 금리로 해도 매일 500여만 원의 이자가 붙고, 약 30억짜리 로또가 555번(10년 6개월 연속) 당첨되어야 만들 수 있는 금액이라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나사 하나 만들지 않는 인터넷 사업은 수십조의 재산가도 낳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거듭된 산업혁명은 인류가 가진 부를 0/1%와 99.9%로 나누고 있다. 이와 같은 극단적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우린 우리 삶의 풍요와 행복을 산업혁명에서가 아니라 부활한 해커 홍길동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