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세계를 배회하는 유령2부 – 신자유주의

약 2500년 전 주화의 발명과 캥거루 족의 탄생

 

독립을 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부모의 그늘아래 머물러야 하는 젊은 세대들을 캥거루 족이라 칭한다. 이 명칭은 미래를 이끌 차세대의 고단한 삶을 반영한다. 포유류 중 가장 고등동물로서 생태계의 최상위자라 하는 인간이 태어난 지 20여년이 지나도 부모의 보살핌 아래에서 산다는 것을 다른 동물들이 안다면 얼마나 비웃을까?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태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먹이를 사냥하거나 찾아 나선다. 유독 인간만이 긴긴 시간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다. 때로 특이한 인간은 평생을 의지하기도 한다. 참으로 영리하다. 개미가 진딧물이 분비하는 특성물질을 자신의 영양소로 취하는데 그 대가로 개미는 무당벌레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한다. 그런데 영리한 인간은 부모의 모성애를 자극하여 부모의 노력의 결실을 대가 없이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옛날 물질문명이 거의 없다시피 아주 낮은 단계였던 수렵채집 시대의 인간은 10살이면 충분히 자기 몫을 해내고 살았다. 어찌하여 진화를 거듭하고 발전을 거듭한 현대사회의 인간은 더욱더 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약 2500년전 주화가 처음 발명되고 나서라고 본다. 주화의 등장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편중을 가져왔다.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전지전능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이제는 출생성분을 좌우한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그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신분사회는 좀처럼 깨지기 어려워졌고, 자본의 소유 과다여부로 형성된 새로운 계급서열은 계급간 갈등과 대립을 초래했다. 이와 같은 계층간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는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하던 원시공동체 사회 이후 사유재산이 허용되면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한다.

 

세탁기, 보일러, 밥솥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변화지 않는 인간의 노동

 

봉건제사회와 근대사회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면서 사회적 생산력은 고도로 발전하였으며, 이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고 이로 인하여 인간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삶의 질은 의식주만의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며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대전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다시금 생존의 벼랑으로 치달은 극빈층의 출현은 인간의 역사가 인본적으로는 퇴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삶의 질은 어떤 면에서는 추락 할대로 추락하였다. 수렵채집의 시대 인간은 가장 최소의 노동만으로도 의식주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노동력을 앗아갔던 빨래와 밥짓기, 보온을 위한 아궁이 관리를 세탁기, 밥솥, 보일러가 대신하게 되었지만 인간의 삶은 결코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더욱 빠르고 바빠졌을 뿐 인간 스스로를 더 여유롭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세탁기와 보일러가 돌고 밥솥이 밥을 하는 동안 우린 뭔가 또다시 다른 일에 빠져있다. 때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할 만큼 바쁘다. 그럼에도 경제적 상황은 더 나아지기는커녕 항상 치솟는 물가를 뒤쫓기에 바쁘다. 생산력의 고도화로 한편에서는 산더미처럼 남는 음식물을 처리하는데 비용을 지불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을 굶는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은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생산력이 고도화된 만큼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불평등의 결론은 대립과 갈등을 가져오고 합의에 실패한 결과는 극단적 행동이다.

 

탐욕의 신자유주의

 

21세기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를 많은 세계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수상의 집권 시 침체된 자국경제를 위해 추진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 제국주의 시대에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무력으로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고 약탈을 일삼던 제국주의가 화장을 하고 화려한 미소를 띄우며 이번에는 화폐(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그럴싸한 문구로 포장하고 등장하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세 봉건제 사회의 약소국 경제체제를 선진국들에게 종속화 시켜 수탈을 용이하게 한 것처럼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정책을 내세워 후발 개도국의 경제체제를 종속화시켜 그 이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후발 개도국의 경제지원을 위한 차관 및 자본투자 조건으로 관세장벽 및 금리정책 완화, 고용조건 개선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뒤쳐진 자국산업을 지키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와 은행규제는 후발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의 완화는 후발개도국의 무장해제와 같은 것이다. 은행규제 완화의 금리정책은 소비를 확대시켜 가계부채를 증가시켰으며, 해고의 자유를 허용하는 고용조건의 개선은 노동자의 삶을 불안정 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러한 제반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은 선진국 자본의 투자를 가져왔지만 반면에 국내 경제의 취약함과 더불어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헤치게 되었고, 투자로 인해 발생한 이익의 대부분은 현지국가에 재투자되기 보다는 본국으로 가져가 먹튀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것이다. 1965년 가난한 나라 대 부자나라의 경제가 35배의 차이가 났으나 현재는 80배의 차이가 난다는 조사결과를 보면 부의 집중은 한 국가 안에서만이 아니라 국가간에도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를 위한 부자감세, 몰락하는 중산층

 

감세정책과 복지축소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세정책은 조세수입의 감소를 가져오고 국가재정 부족을 이유로 국가는 국민의 복지 축소를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국가의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을 보면 40%에 가까운 세금과, 국민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확충된 복지정책을 추진하는데 이는 수레의 바퀴와 같이 함께 움직인다. 결국 감세정책과 복지축소는 부의 집중과 극빈층을 낳았다. 국가역할의 최소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또 하나의 병폐는 바로 이처럼 사회를 양극단화 시킨 것이다.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적극 수행하여 부자들로부터 더 거두어들인 세입으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하여 사회적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기하여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중산층의 상류층 진입은 어쩌다라도 가능하지만 극빈층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극빈층은 재테크를 할 여유자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한나라의 정책의 잘못되면 한나라가 한 순간에 몰락하듯이 세계경제 정책이 잘못되면 세계경제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후보, 영국의 EU 탈퇴, 필리핀의 마약과의 전쟁, 터키의 쿠테타 이후 공포정치, 이 모든 현상들의 이면에는 극빈층으로 전락한 사회적 소외계층의 불만과 벼랑 끝에 내몰린 극빈층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자리잡고 있다.

 

주머니가 든든하면 쓰지 말래도 쓴다

 

공공 서비스, 즉 도로, 항만, 교육, 의료, 경찰, 군대 등의 이용 없이 어떠한 기업도 기업을 운영할 수 없으며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즉 공공시설을 이용하지 않고는 어떠한 기업도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기업이다. 따라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기업이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고 그 기업의 이윤을 창출해내는 원천인 노동자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복지정책에 세금을 내는 것은 기업의 발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공동체 사회에서 어느 한 계층의 몰락은 당연히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국가는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은행 대출을 완화하여 가계부채의 증가로 개인파산 끝에 자살을 선택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정한 소비자를 위한 정책은 소비자의 수입을 증가시켜 건전한 가계재정을 확립하는 정책인 것이다. 주머니에 돈이 넘치면 누구라도 소비 욕구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