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옛 시 속 우리 악기 – 가야금 편(1)

보통 ‘선비들이 즐기던 악기’하면 거문고를 떠올리지만 고려시대의 문인들은 가야금을 즐겼다 한다. 특히 민족 영웅 대서사시인 ‘동명왕 편’을 지은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 보는 가야금을 무척 좋아해서 그의 시 속에는 가야금이 등장을 하곤 한 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서 고려시대 가야금의 모습이나 연 주법 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나는 일찍이 생각하기를,

노경에 소일할 낙은

백낙천의 시를 읽거나 혹은

가야금을 타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겠다.

가야금은 대개 옛날 진쟁 (진 나라에서 만든 쟁)의 종류로

줄 하나만 모자랄 뿐이다.

줄은 손가락을 상하지 않고

그 소리가 간절하여

노쇠한 정을 쉽게 호탕하게 한다.

이규보가 백낙천의(백거이, 중국시 의 시인)시를 묶어 책으로 만든 뒤 그 후기에 지어 넣은 시이다. 이 시를 통해 이규보가 가야금 연 주를 즐기며 노후를 보낸 것을 짐 작할 수 있다. 또한 이규보는 ‘유월 팔일 가야금을 얻어 처음으로 타다’ 라는 글도 남겼는데 이 글에서는 ‘금칠한 안족이 기러기 행렬같이 늘 어섰는데’라는 구절이 나와서 고려 시대에도 안족(가야금 줄을 얻어 놓는 일종의 브리지, 안족을 움직 여 조율을 한다)에 금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안족 에 금박을 장식한 신라가야금의 전 통이 고려까지도 전승됐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또한 이규보의 시 중에는 “누에고 치실로 만든 가야금 줄” 이라는 부 분이 나오기 때문에 고려시대에도 역시 지금처럼 명주실로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데 지금은 가야금을 현대식 무대에 세우면서 명주실로 연주하는 소리 가 작다고, 혹은 소리가 마이크를 잘 타지 않는다고 합성실로 만든 줄 도 가야금에 사용하고 있다. 안타까 운 일이다. 이규보는 또한 이런 시 도 남겼다.

바람결에 우는 가야금

창문 가까이 가야금을 놓았더니

바람이 지나며 스르릉 울리네

내 고요히 듣고 있노라

하늘의 음악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내 지금 옛 곡조를 다 잊어

희롱하며 가야금 줄만 울리네.

바람도 나의 서투름을 아는지

곡조 아닌 곡조를 일부러 울리누나.

신라의 ‘삼현삼죽’으로 궁중에서 연 주되던 가야금은 고려시대에도 궁 중음악에서 연주돼 그 전통이 이어 졌다. 궁중에서는 노래와 춤을 반주하기 도 했고 몇몇 문인들은 풍류를 즐 기는 중에 가야금을 노래한 시를 쓰 기도 했는데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 면서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고 때 때로 가야금 연주에 뛰어난 이들을 초청해서 그 음악 듣기를 좋아했음 을 알 수 있다. 특히 이규보의 시에 서 가야금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당 시 가야금은 선비의 일상생활 속에 서도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떠했을 까? 조선시대에도 가야금은 궁중 에서 연주됐다. 가야금을 전공으로 하는 궁중 악사들이 계속 배출됐고 풍류를 즐기는 문인의 곁에도 가야 금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글 속에도 가야금이 등장한다. 담헌 홍대용이 가야금을 연주했다 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홍대용은 음 악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고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양금’(고대 아시리 아와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악기, 철 로 만든 줄을 작은 채로 두드려 소 리낸다)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연주 한 사람도 홍대용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그의 주변에는 늘 음악이 있 었다. 또한 음악을 위해서는 신분과 나이에 관 계없이 여러 인물들과 교류를 했다고 하는데 어 느 날 홍대용의 풍류방에서 열린 풍류음악회 모 습이 옛 글에 전해지고 있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

사진:백운거사 이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