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옛 시 속 우리 악기 – 가야금 편(2)

<유춘오에서의 음악회를 적다>라는 글로 유춘오, 즉 ‘봄이 머무는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이 집은 남산 아래 있던 홍대용의 거처였고 이 음악회에는 다양한 악기가 한자리에 모였다. 가야금과 거문고, 퉁소와 양금이 어우러지고, 생황 반주에 노래가 곁들여진 실내음악회가 봄이 머무는 언덕에 펼쳐진 것이다.

홍대용은 가야금을 앞에 놓고, 홍경성은 거문고를 잡았다.

이한진은 퉁소를 소매에서 꺼내고, 김억은 서양금을 당긴다.

장악원의 악공인 보안은 생황을 연주하는데, 홍대용의 유춘오에 모였다.

유학중은 노래를 불렀다.

교교재 김용겸 공은 연장자로 윗자리에 앉았다.

좋은 술이 조금 얼큰해지자 여러 악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뜨락은 깊고 대낮은 고요한데, 지는 꽃 잎은 섬돌에 가득하다.

궁성과 우성이 번갈아 갈마드니 곡조 는 그윽하고 절묘한 경지로접 어든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집인 ‘연암집’에 실린 하야연기’ (夏夜讌記)에도 가 야금을 비롯한 악기들이 어우러졌던 풍류음악회의 기록이 있다.

스무 이튿날 국옹과 함께 걸어서 담헌

(湛軒)의 집에 이르렀다.

풍무(風舞)가 밤에 왔다.

담헌이 가야금을 타니, 풍무는 거문고

로 화답하고 국옹은 맨상투 바람으로

노래를 불렀다.

밤이 깊어 떠도는 구름이 사방으로 얽

히고 더운 기운이 잠깐 물러가자, 줄에

서 나는 소리는 더욱 맑게 들렸다.

‘담헌’은 홍대용을 가리키고 ‘풍무’는 김억이라는 악사(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인데 가야금과 거문고가 연주되니 국옹이라는 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더운 기운이 잠깐 물러가자 줄에서 나는 소리가 더욱 맑게 들린다’는 구절을 보면 박지원 역시 음악에 조예가 깊었음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산 윤선도 역시 가야금을 즐겨 탔다.

버렷던 가야고랄 줄 언져 노라보

니 청아한 넷 소래 반가이 나난고야

이 곡조 알리 업스니 집겨 노하 두어라

이렇게 가야금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20세기 이후의 가야금의 전통은 이왕직 아악부의 명인들에게 전승됐으며 그 전통은 국립국악원으로 전승되고 있으니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우리민족과 함께 얼마나 오랜 세월을 숨 쉬어 왔는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가야금은 어디에 있을까?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개조되고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가야금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련해진다. 끝으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시인 조지훈의 “가야금”이라는 시를 소개해 본다.

가야금 – 조지훈-

휘영청 달 밝은 제 창을 열고 홀로 앉다

품에 가득 국화 향기 외로움이 병이어라.

푸른 담배 연기 하늘에 바람 차고붉은 술그림자 두뺨이 더워 온다.

천지가 괴괴한데 찾아올 이 하나 없다 宇宙가 茫茫해도 옛 생각은 새로워라.

달 아래 쓰러지니 깊은 밤은 바다런듯 蒼茫한 물결소리 草屋이 떠나간다

조각배 노 젓듯이 가얏고를 앞에 놓고 열두줄 고른 다음 벽에 기대 말이 없다.

눈 스르르 감고 나니 흥이 먼저 앞서노라 춤추는 열손가락 제대로 맡길랐다.

구름끝 드높은 길 외기러기 울고 가네 銀河 맑은 물에 뭇별이 잠기다니.

내 무슨 恨이 있어 興亡도 꿈속으로 잊은 듯 되살아서 임 이름 부르는고.

風流 가얏고에 이는 꿈이 가이없다 열두줄 다 끊어도 울리고 말 이 心思라.

줄줄이 고로 눌러 맺힌 시름 풀이랏다

머리를 끄덕이고 손을 잠깐 쓸쩍 들어

뚱뚱 뚱 두두 뚱뚱 흥흥 응 두두뚱 뚱

調格을 다 잊으니 손끝에 피맺힌다.

구름은 왜 안 가고 달빛은 무삼일 저리 흰고 높아 가는 물소리에 靑山이 무너진다

사진 – 상단 : 실학자 홍대용의 정원, 하단 : 연암집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