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1만 2천 년을 함께 한 개와 인간의 만남

인간을 선택한 개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자연을 선택한 늑대는?

이스라엘에서 1만 2천 년 전 묻힌 여인의 손에 강아지가 함께 발견되면서 개와 인간의 역사는 최소 1만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어느 날 인간이 먹고 남은 뼈와 뼈에 붙어 있던 고기에 맛을 들인 늑대가 석기시대의 인간집단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늑대는 집단 사회생활을 하니 아마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잡혔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 한 마리가 잡혔더라도 다른 동료 늑대가 구하려 하거나 동정심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마저 잡혔을 수도 있다. 인간은 늑대를 위협적 존재로 여겼거나 식량으로 생각하고 포획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잡아먹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늑대를 관찰하다 쓸모를 발견하곤 가축으로 키웠을 것이다.

 

개와 인간의 역사

이처럼 개와 인간의 관계는 1만 8000년 전에서 약 3만 2천 년 전 사이 유럽에서 살았던 회색늑대가 인간 사냥꾼이 남긴 음식을 먹으면서 길들었다는 것이 일반적 속설이다. 최근 미국 과학전문잡지 사이언스에 개의 진화과정에 대한 3가지 결과가 발표되었다. 첫째는 개는 아시아 지역의 늑대로부터 진화하였다. 둘째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개는 똑같은 조상이다. 셋째는 1만 5천 년 전부터 길들였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연구 결과는 전 세계에 분포된 개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유럽의 개와 아메리카의 개들은 유전적으로 비슷하다고 한다. 이 연구의 의미는 인간이 베링해협을 건넜을 때 개들도 함께 건너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와 인간은 비슷한 시기에 진화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프랑스 리옹 고등사범학교 연구진은 약 7,000년 전에 개는 밀과 수수를 먹기 위해 녹말을 소화하는 소화기관의 유전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구석기 시대 이미 보리재배를 한 흔적이 나타나고, 인류가 작물을 재배한 증거는 원시민족인 호서인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이 시기는 늑대와 인간이 함께 하기 시작한 1만 2천 년 전과 비슷한 시기다. 인간을 선택한 개(당시는 늑대)의 주식은 당연히 인간의 주식과 같았을 것이다. 이를 받아들인 늑대는 개로 진화하고 거부한 늑대는 굶어 죽거나 야생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결국, 인간을 선택한 늑대는 유전자 변화를 통해 인간을 받아들인(인간의 주식을 먹을 수 있는) 개가 된 것이다.

 

왜 늑대는 자신의 본성을 잃고 개가 되었나?

개의 뿌리가 늑대라 하지만 오늘날 늑대와 개의 생활을 비교하면 유전적 일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다르다. 특히 집단 사회생활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자신보다 큰 동물을 사냥해야 하는 늑대사회는 협업과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그러나 먹이 사냥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개는 집단생활이 필요 없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개는 먹이를 두고 항상 경쟁한다. 강한 개는 결코 약한 개와 먹이를 나누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사료통에 먹이를 주면 약한 개는 강한 개가 허용하지 않는 한 사료통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강한 개가 배가 불러 더는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나먹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반면, 집단생활을 하는 늑대는 둘 다 배가 고픈 상태라 하더라도 항상 같이 먹는다. 힘이 센 늑대는 무리를 책임지는 가모장으로서 무리 전체를 돌본다. 심지어 알파 늑대(무리에서 슈퍼파워를 가진 수컷늑대)는 사냥을 해서 먹이를 잡으면 자리를 떠나 잠을 자거나 쉰다. 다른 늑대들이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배려를 한다. 폭력으로서 무리를 통제하지 않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먹을 것을 얻는 개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배려다. 결국, 인간에게 복종을 선택한 개는 안락함에 빠져 늑대의 본성을 잃었다. 이제 인간을 떠난 개의 생존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을 잃고 물질문명에 의존하는 인간과, 늑대의 본성을 잃고 인간에 의존하며 사는 둘을 바라본다.

스쿼미시 부족의 인디언 추장 시애틀은 미국 대통령 피어슨과 땅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던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백인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 글의 참된 의미는 전체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을 바라보고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당연히 돌아가야 하는데 그 자연을 팔라고 하는 백인들에게 자연은 내 것이 아니라 팔 수도 없지만, 그 제의를 거절하면 총으로 빼앗을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제의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리고 부족이 나고 자란 땅, 즉 모든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를 떠나게 되었으니 이제 삶은 없어지고 살아남는 것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인간을 닮은 개는 인간의 이기적 폭력성을 배우는 대신 늑대의 본성인 나눔과 자비를 잃었다. 이제 개는 늑대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 중에도 폭력적인 알파 늑대가 있다. 그러나 그 폭력적 늑대는 머지않아 집단으로부터 퇴출당하거나 심할 경우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늑대 우두머리인 알파 늑대는 폭력으로 무리를 제압하지 않고 모범으로 통제한다. 왜냐하면, 폭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 무리의 응집력과 협동심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늑대를 엘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연구한 늑대 관찰자 릭 매킨타이어(Rick McIntyre)의 연구 결과다.

그 어떤 동물도 자연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그곳이 바로 그들의 생존 보고이기 때문이다. 무리 사회를 이뤄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의 폭력은 자신의 집단을 향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먹이 사냥을 위해서다. 그런데 인간과 개는 최소 1만 2천 년을 함께 하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영향을 서로 끼친 것인가? 인간을 닮아가는 개가 불쌍한 것인가? 개를 키우다 개와 닮아진 인간이 불쌍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