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천년토록 영원한 생명의 음악 ‘천년만세’ (千年萬歲) (1)

앞뒤가 모두 막힌 도심 속, 빌딩 숲에서 살다보면, 창밖의 풍경이 마치 TV 화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존재하는 현실의 공간이 아닌, 습관처럼 틀어 놓는 TV화면처럼 저 건너의 세상들이 보인다. 겨우내 흑백화면을 봐야 했던 내게 봄은 참으로 즐거운 눈의 호사였다. 마치 컬러 TV를 처음 본 사람처럼 봄꽃의 현란함에 취하기도 했었는데, 무엇이든 넘치면 뒤탈이 있듯이, 화사한 색채에 현혹 돼 있던 눈은 피곤함을 느끼게 되고 이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간사한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자연은 봄꽃의 향연을 거두고 우리에게 편안히 쉴 수 있는 ‘초록’을 안겨다 주었다.

내 아이의 여리디 여린, 말랑한 속 살 같은 어린 연초록들이 대견스럽게 피어오르더니, 뒤돌아보니 어느덧 거리가 온통 ‘초록’…이다. 그런데 이 계절의 초록은 단순히 한 가지 색으로는 표현이 안되는 듯하다. 적당히 짙고 적당히 여린, 색채의 농담(濃淡)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나는 언젠가부터 화사한 봄꽃보다 여름의 ‘초록’을 좋아하게 되었다. 초록은 튀지 않아서 좋다. 봄꽃들은 마치 미인 대회에 나온 여인들처럼 자신의 미모를 한껏 뽐내려 하지만 초록은 누구 하나 나서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초록은 우리의 눈을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의 심신을 안정시켜준다.

어쩌면 우리 음악도 초록과 같을지 모르겠다. 한 번 보고 반해버리는 화사한 봄꽃 같은 음악은 아니지만, 묵묵히 거기에 서서 우리의 눈을 편안하게해 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초록과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 음악이다.

또한 우리 음악에도 ‘농담(濃淡)’이있다. 한가지 음을 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를 똑 같이 내는 것이 아니라 밀고, 당기고, 감추고 떨며, 감정의 끝을 놓았다, 잡았다 한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