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버들은 실이 되고(1)

중국 여행 중, 서태후의 별궁이었다는 ‘이화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쿤밍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의 거대함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나고, 또한 그 호수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인공’호수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런 나라인 것 같다. 산성을 쌓아도 만리를 쌓고 자금성은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북경 시내의 건물들도 어쩌면 그렇게 크게크게 지어 놨는지…. 좁은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로는 상상하기 힘든 ‘공간의 낭비’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거대한 인공호수 주변의 버드나무는 ‘휘여 능청’해 보이지가 않았다.

우리 땅에서처럼 중국에도 물가에 버드나무가 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지만 우리가 즐겼던 ‘축 축 늘어진 가지’의 풍류나 민요에 등장하는 ‘휘여능청’이라는 표현이 이화원의 버드나무에서는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모든 것이 다 큼직큼직하기 때문에 버드나무 가지가 제 아무리 길다 해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구나’ 라고…우리에게 있어서 버드나무는 축축 늘어진 가지가 매력적인 나무이며 그 늘어진 가지에서 옛 사람들은 기나긴 ‘세월’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긴 가지에 세월도 묶어 두려고 했다. 경기민요 ‘노들 강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버드나무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의 한허리를 칭칭 동여맨다』

이 노래에서 버드나무 가지에 무정세월을 묶어 두려 했다면 버들을 ‘실’로 여긴 노래도 있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