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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Calgary Herald

덩케르크의 혼돈 속에 다시 선 캘거리 참전용사

캘거리에 거주하는 97세의 참전용사가 ‘덩케르크’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서 77년 전의 전쟁 현장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약 350,000명의 연합군이 수많은 작은 배를 타고 탈출했던 덩케르크의 해안을 켄 스터디(Ken Sturdy)는 영화 속에서 다시 경험했다.

“정말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혼돈입니다. 그것은 혼돈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그 해안을 떠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치에 맞서기 위해 일찍 그 땅에 발을 디뎠던 사람들은 모든 무기를 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유럽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갔던 모든 이들은 그저 몸만 가지고 빠져 나왔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당시 20세였던 스터디 씨는 영국 해군으로서 포츠머스에서 신호수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도버의 해군 제독으로부터 해군에게 긴급 명령이 내려졌다.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동원되었고, 프랑스의 해안에서 위험에 빠져 있는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많은 작은 배들을 끌고 해협을 건넜다.

“그것은 깔끔하게 조직화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체계적이었습니다. 그냥 배를 향해 뛰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줄을 서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폭격이 이루어졌고 하늘에서는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이상한 혼돈이었습니다. 열흘 동안 지속된 일종의 공포였습니다.”

1940년 6월 4일에 마침내 덩케르크의 해안에는 더 이상 남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구출되지 못한 군인들은 모두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스터디 씨는 영화가 그 당시의 느낌을 현실감 있게 재현했다고 말하면서 목숨을 잃은 많은 이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우리가 잃었던 많은 젊은 동료들은 18살, 19살, 20살이었습니다. 나는 오래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니 내 나이 또래였으나 긴 삶을 누리지 못한 모든 이들이 생각납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스터디 씨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이 지났을 무렵, 부인과 함께 캘거리로 이주했다. 그는 예술가가 되었고 Alberta College of Art and Design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덩케르크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군인들을 성공적으로 탈출시켰는지는 모르겠다고 토로한 스터디 씨는, 영화가 전쟁의 참상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인류는 아주 똑똑합니다. 우리는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유지하는 문제에 오면 인류는 멍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