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향기

‘풀무소리’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당신의 삶이 지치고 힘에 겨우면 한순간만이라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 보아라”. 이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종종 “찹쌀떡”이라 부르는 우리아기의 볼에 뺨을 비비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곤 한다. ‘엄마’로 살아온 지난 15개월의 시간은 그야말로 ‘감사’의 시간이었다.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섯개’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고,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말에 감격해서 화살기도라도 하듯 성호를 긋곤 한다. 나는 우리 아기를 “복둥이”라고 부른다. 호적에 올린 멋진 이름이 있긴 하지만 뱃속에 있을 때 지었던 태명이 너무 좋아, 아마도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르게 된 것 같다. 복둥이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행동을 하고 새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아이가 작은 변화를 거듭할 때마다 초보 엄마인 나는 ‘지식검색’에 몰두 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인터넷에는 아이의 성장에 따른 갖가지 지식들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내가 찾은 것이 그야 말로 지식 검색이었을 뿐 지혜가 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우리 복둥이는 걸음마가 느린편 이었는데 어느 날, 외가 집에 간 복둥이는 할아버지가 불러주시는 “불매 불매 불매야”라는 노래에 맞춰 다리 운동을 하게 됐고, 그 뒤부터는 제법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담긴 육아법이 아닐까? 옛 어른들은 아이의 성장에 맞춰, 신체의 움직임에 도움이 되는 노래를 불러주었고 또한 노래에 맞는 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육아 유희요”라 부른다는데, 아기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손 운동이다. 막 태어난 아이는 손을 꼭 쥐고 있는데 며칠이 지나면 아이는 손을 펴기 시작한다. 그러 면 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잼잼’을 가르친다.

잼잼을 하던 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세우기 시작하고 그 손가락을 맛있게 빨곤 한다. 그리고 7, 8개월 정도가 되면 아이는 집게손가락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이때 어른들은 ‘곤지곤지’를 가르친다. 또한 우리의소리 중에는 ‘아이어르는소리’가 있는데 이것은 우는아기를 달래거나 아이를 재울 때 부르는 노래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의 신체 발달을 돕는 현명한 뜻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달강 달강”이라는 노래는 아이가 앉기 시작하면 불러주는 노래로,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두 손을 잡은 뒤, ‘밀었다 당겼다’를 반복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따라서 아이는 이러한 행동과 함께 몸에 균형을 잡게 되고 스스로 앉아 있는 방법을 터득 하게 된다.

‘달강 달강’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노래인데 그 가사 또한 재미나다. 주어온 밤을 부엌 어딘가에 잘 두었는데 새앙쥐가 드나들며 거의 다 먹어버리고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며 밤을 훔쳐먹은새앙쥐가 ‘머리가 검다’고 하거나 혹은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사람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복둥이가 외가 집에서 경험한 것이 바로 “풀무소리”이다. 이것은 아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좌우로 걸음마를 시키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아이는 발이 방바닥에 닿으면 제 나름대로 걸음마를 하려고 힘을 쓰게 되고, 따라서 점점 다리에 힘이 생기고, 그래서 걸음마를 빨리 배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 노래는 ‘풀무소리’ 라했을까? 발을 좌우로 번갈아 딛는 것이 풀무질을 하던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 하며 ‘풀무소리’는 본래 대장간에서 부르던 노래이지만 옛날에는 집에서도 불을 피우기 위해서 풀무를 사용했고 그래서 풀무가 어머니들의 생활필수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숨은 뜻도 있으니, 풀무간에서쇠를 녹여 물건을 만들어내듯 아이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겨 있다고 한다.

내 주위에는 복둥이 또래의 아이들이 몇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돌무렵이 되면 각종 ‘놀이교실’을 가게 되는데, 그중 엄마들이 부담 없이 데리고 가는 곳이 바로 ‘음악놀이 교실’이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그곳에서는 북을 치거나 마라카스를 흔들며 놀이를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율동을 한다고 한다. 사실 나도 가끔은 그 곳에 가고 싶다. 그래서 음악만 나오면 엉덩이를 흔들며 박 자를 맞추는 우리 복둥이의 음악성을 확인해 보고 싶은, 엄마다운 착각과 극성이 고개를 들 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 마다 나는 전래동요 를 틀어놓고 아이와 함께 집안의 모든 물건을 두드리며 우리만의 놀이시간을 갖는다. 그리 고 이런 계획도 세운다. 내일은 복둥이에게 “이 거리 저 거리 각 거리”.. 다리 빼기 놀이를 가르쳐 주리라. 그 방면에서 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음악성을 자랑하는 복둥이의 할머니,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서…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