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세계를 배회하는 유령 3부 – 국가란 공동체 구성원간의 합의된 정신의 발현체

386세대의 참회

 

386세대인 기자는 최근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힘든 삶을 바라보며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80년대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자긍심은 현실의 처참함에 참담하게 무너졌다. 흔히 88만원 세대라고 칭하는 20, 30대 젊은이들이 취업의 벽 앞에 좌절하고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현재 한국정치의 중심축은 386세대이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현실사회에서는 이념적 이상에 불과하였다는 것에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미안할 뿐이다. 동네마다 들어선 커피숍이 한국사람이 커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취업이 어려운 젊은 세대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한 대안이라는 현실에 막막하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젊은 세대들에게 꿈이 왜 없느냐고 다그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꿈을 가질 수 없는 당사자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할 것이다.

 

국가와 국가권력

정치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세력간의 경쟁이다. 각 정치세력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중심으로 제반 정강정책을 수립한다. 그리고 장악한 국가권력으로 그 정강정책을 실행해 간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을 포괄하고 있는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권력과 국가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국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구성원 각자의 삶의 편의를 위하여 합의 된 정신의 표현물이다. 어떠한 실체를 갖는 물질이 아니라 이념적 정신의 발현체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그 구성원들의 삶의 편의를 현실사회에서 실행해나가는 구성원들의 권한을 위임 받은 기구이다. 국가권력은 경찰, 군대, 행정부 등 역할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띤다. 즉 국가권력은 선거를 통해 그 책임자가 구성원들의 투표로 정해지며 국가 안에서 실질적인 파워를 발휘한다. 국가의 역할은 구성원인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구현할 의무가 있고, 국가권력을 장악한 집단은 당연히 국가역할, 즉 국민복지 향상을 위한 제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린 가끔 국가권력을 국가 그 자체로 혼동하고 있다.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고 한 표현을 전제국가 시대 이야기라고 비웃으면서 정작 우린 그렇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그 자체는 공동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확대됨에 따라서 서로가 합의된 룰을 만들고 서로가 인정함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즉 국가란 공동체 구성원간의 합의된 정신의 도출 물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공정함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여기에서 국가 역할의 중요성이 나온다. 특정계층의 후보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다 하더라도 권력을 장악한 축이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문제가 아니다. 그의 역할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 전체를 위하여 그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의 자유화란 불공정한 게임이다. 마치 권투에서 라이트급과 헤비급의 대결처럼 시작부터가 공정하지 않다. 사전에 체급을 동등하게 하고 게임 중에 반칙을 쓰면 안 되는 것처럼 국가는 국민 모두가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교육을 받을 기회는 돈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국민모두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체급을 같게 하는 것과 같다. 게임 중에 부상이 발생하면 경기는 중단된다. 물론 승리는 부상의 원인에 따라 누가 승자인지 판단을 내리겠지만, 실제 국민의 삶에서는 누가 승자인지가 아니라 부상 당한 선수가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야 한다. 그 선수가 강하고 약하고는 문제가 아니고 링 위의 선수에게는 모두 적용되어야 한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혜택을 받아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선택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라 칭할 수 있다.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를 향유할 것인가 아닌가는 당사자가 결정할 일이지 국가가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국가의 역할은 국가권력을 통하여 구성원인 국민모두의 행복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할 것을 요구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장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자본의 탐욕을 끝없이 보장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자본의 수단인 화폐를 사용하기 이전 시대에는 부의 축적이란 거의 불가능하였다.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고 저장과 운반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화폐가 발명되고 난 이후 인간의 삶은 당장 먹을 수도 없는 물질을 모으는데 평생을 바친다. 시대가 지날수록 더 빠르고 더 바쁘게 화폐를, 즉 돈을 모으는데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의 질을 포기하고 있다. 노예는 자신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주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우리의 삶, 어느 순간 우리도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자본의 탐욕은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한계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다국적 기업, 국가의 규제 필요

화폐를 모으는 행위, 즉 돈을 버는 행위가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가치가 화폐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GNP로 국민의 삶의 질을 평가하듯이 말이다. 본질은 한 국가에서 발생한 부의 총액은 국가의 적극적 역할(조세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을 통하여 국민모두의 행복을 위해 쓰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시장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규제를 없앤다고 해도 구성원인 국민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정부역할과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국가를 만들고 존립하게 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자본축적의 주체는 당연히 자본이지만, 조절기능은 국가의 역할이다. 시장이 항상 효율적이고 균형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시장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이미 다국적 기업에 의해 원거리 조정되고 있다. 국가를 등에 업은 기업위주의 시장은 분규 있는 곳에 국가가 배후로 있다는 것에서 보듯이 자본과 노동의 협력적, 상호보완적 노동시장정책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국이나 영국의 실업률이 탈규제(국가간섭배제) 이전의 60, 70년대보다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기업통장에 쌓인 돈은 늘어났으나 오히려 노동자의 실업률은 더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애국심에 대한 정의를 묻는 질문에 “애국심은 시민들이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세계의 지성 조지 레이코프는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서로를 돌보는 가운데 있는 시스템이라 말하고 책임 있는 행동과 사회적으로 서로를 돌보며,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서로를 보살필 수 있도록 잘 행동할 때 그 사회는 훌륭한 윤리적 가치를 갖춘다”고 하였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승자독식은 중산층을 몰락시켜 사회계층을 양극화시켰고 이로 인하여 사회적 갈등은 극에 달했다. 슈퍼파워를 가진 기업과 부자들은 무너지지 않을 탑을 세우고 있지만 건전한 소비계층인 사회 중심세력의 중산층이 몰락한 사회에서 세운 탑은 모래 탑과 같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

 

미래의 전쟁에서 로봇보다 무서운 상대는 자본의 탐욕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으로 공동체 사회를 굳건히 세우는 것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다. 따라서 국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 부의 분배를 통해 계층간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고, 기업은 이윤의 공정한 사회적 배분을 통해 사회적 기여를 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주체의 소비자의 건전한 가계재정을 확립하게 한다면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를 멈추게 하는 하나의 길의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주 먼 옛날 대제국 페르시아에 비하면 일개 소도시에 불과했던 그리스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은 역사가들이 평하기를 “ 페르시아 군대는 왕을 위해 싸웠고, 그리스 군대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동체 구성의 최소단위인 가정의 행복은 분명 한 사회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고 나아가서는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행복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국가와 기업은 페르시아의 군대와 같이 양적인 확대가 아니라 질적으로 내실을 기해 승리 한 그리스 군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기업은 노동의 결과가 노동자의 삶의 질을 나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본은 불행하게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자본의 사적 소유가 인정된 이후 전개된 길고 긴 자본과 인간의 싸움에서 탐욕에 굴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세계를 떠도는 유령은 항상 탐욕의 틈을 노리고 배회하고 있으니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으로 유령의 설 자리를 없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