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모두가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여행의 계절에 여행을 생각해본다

7월 초에 캘로나로 신선한 체리도 직접 따서 먹고 딴 체리를 사 올 겸 아내와 지인의 가족 모두 6명이 다녀왔다.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서 아직 체리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래서 애초에 가기로 한 체리 농장은 체리 따기를 시작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계획을 바꿔 와이너리 투어를 하게 되었다. 여행은 이런 것도 묘미라 생각한다. 작년엔 체리는 딸 생각도 없이 그저 와이너리 투어를 했는데 올해는 생각지도 않은 와이너리 투어를 또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곳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자부심을 가진 이름 없는 와이너리를 주로 방문하였다. 붐비지 않아 우리만의 와인 테스팅을 즐기며 주인 소믈리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어 색다른 의미가 있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자기 거주지를 떠나 객지(客地)에 나다니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겨울이 긴 캘거리에서 7월은 황금기다. 차갑고 하얀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모두가 기다려 온 계절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휴가를 즐기는 때이기도 하다. 이 휴가를 맞아 많은 사람이 가깝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무엇일까? 생각하니 일상을 벗어나는 일인 것 같다.

거주지를 떠나면 일상의 생활은 가로막힌다. 습관적으로 하던 일과들이 굳이 할필요가 없거나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생활을 벗어나 마음껏 일탈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일로서 가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은 아닌 것 같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 여행을 간다면 그것은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뭔가가 쫓아 오면 우린 바빠진다. 그 뭔가를 위해 계획하고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이는 순전히 나의 견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사람마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공통적인 것은 반복된 일상의 중단이나, 원치 않았던 일의 돌발적인 발생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일상과 돌발적인 일은 저마다 다르다. 일에 대한 압박, 실연에 의한 슬픔, 사업에 대한 실패, 배신, 혐오, 싫증과 같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가 있겠다. 또한, 이런 부정적 측면 말고, 식견을 넓힌다든지, 새로운 사업구상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지인들과 열심히 부은 친목 단체의 회비로, 자녀들이 보내준 효도 여행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최근에는 테마 여행이 유행이다. 심지어는 전쟁이나 재해 같은 비극적 역사현장을 찾는 다크 두어리즘(Dark tourism)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러 저러한 의미를 부여한 여행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한다. 사실 많은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상술의 교묘함’이라고 했다. 식견을 넓히기에는 책만 한 것이 없고, 인식의 전환은 좋은 영화 한 편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심금을 울리는 감동은 오선지를 수놓는 선율에서 받을 수도 있다. 굳이 여행이 아니어도 많은 길이 우리 주변에 깔렸다. 그런데 여행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관련 업체들이 마치 여행만이 줄 수 있는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충분히 동의할 만한 요소가 있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사피엔스에게는 충분히 호소력을 주는 상술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휴가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휴가를 의무라 생각하는 사람들

캐나다에 와서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때 지인들과 캠핑을 자주 갔다. 그곳에서 RV를 갖고 온 노부부를 본 적 있다. 2박 3일을 머무는 동안 그들의 일상은 책을 읽다가 산책을 하다가 조용히 음악을 듣다가 잠을 자기도 하고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보내고 있었다. 매끼 식사도 커피 한잔에 아주 간단히 핫도그나 샌드위치, 햄버거 등 매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아주 짧았다. 그래도 먹는 시간은 길었던 것 같다. 10여 분 준비해서 1시간을 먹는 것 같았다. 치우는 것도 아주 단순하다. 5분이나 걸릴까? 우리와는 반대였다. 한 시간 준비해서 우린 누가 뺏어 먹을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이 10여 분만에 후딱 해치운다. 그리고 치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모두 미식가라 그런가? 우린 여행에서 먹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떤 여행도 마찬가지다. 잠자리가 불편한 것은 어느 정도 참는데 식사가 부실하면 불평이 쏟아진다. 여름휴가를 가면 잠시도 쉬지 않고 뭔가를 하고 남는 시간은 먹기 위한 준비와 먹는 것에 쏟아붓는다. 휴가를 온 것인가? 휴가를 핑계 대고 또 다른 일(먹는 일 포함)을 하기 위해 온 것인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인생을 소풍이라 하지 않았는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인생의 휴가다. 자신에게 주는 공로휴가다. 무엇을 하고 있고 해왔는지를 떠나 지금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잘 버텨준 것에 대한 감사의 휴가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시로 노래했고, 소풍이라 했다. 가난에 허덕이고 혹독한 전기 고문(동백림사건으로)에 심신이 망가졌어도 세상을 아름답다고 했다. 천상병 시인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여행이었을 것이다. 일상을 벗어난다고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늘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것이 아닌가? 매일 먹는 밥이지만 매번 그 맛이 다르듯이 매일의 하루가 같은 생각과 감정을 주지는 않는다. 매일 보는 하늘이 다르고 매일 듣는 아내의 소리도 다르다. 그 다름의 기저에는 내 마음이 깔렸다. 장소가 주는 안식이 아니라 마음이 주는 안식일 것이다. 그 마음이 주는 안식을 찾지 못해 우린 떠난다. 장소와 환경을 바꾸어서라도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한다. 그래서 여행은 한편으로는 자아로의 여행이기도 하다. 아나운서 출신인 손미나 여행작가는 전 세계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필리핀의 말라파스쿠아라 여행이라고 했다. 무인도와 같은 섬에서 보낸 일주일의 여행이 최고였다는 것이다. 문명의 도시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니 너무 편하고 여유로워서 좋았다고 한다. 나는 이곳 캐나다에서 핸드폰이 없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연락처를 물을 때 핸드폰이 없다고 하고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려 하면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없다는 것이 부럽다는 것이다. 난 다른 사람들이 다 있어서 없어도 크게 불편한 점이 없다고 대답했다. 아마 이민을 온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모두가 소풍이 필요하고 인생의 여정을 소풍으로 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