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다

자아로의 여행 나는 누구인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나를 찾고자 함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두고 오는 것이라고 한다. 찾으려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두고 오는 것은 우리의 한없는 욕심과 자만일 것이다. 그러니 여행은 찾기도 두고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모두 갖고 오고 모두 두고 온다.

 

여행과 사진의 불편한 진실

두고 와도 좋을 텐데 우린 마음에 담아오기보다 카메라에 담아온다. 혹시 잊을까봐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하며 주워 담는다. 감상에 젖는 시간은 찰나고 사진 찍기에 틈이 없다. 그래서 여행은 버스에서 졸고, 내리고, 찍고의 반복이라고도 한다.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이 맞을 듯싶다. 멋진 장면에 잠시 감상에 젖어 들고 지난날을 되돌아보기도 하는 성찰의 시간이 될 수도 있으나 많은 사람이 사진에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잊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담고 또 담는다. 물론 사진 한 장은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을 묘사한다. 그래서 알랭드 보통은 사진 한 컷에서 모든 것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여행이 의무가 아니라면 여행은 여행다워야 한다. 거창한 계획과 목적이 있어야 여행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먼 길의 흔적을 더듬어 가려면 기존에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가볍게 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운만큼 채워진다는 뜻이다. 거창한 계획은 여행 내내 여행의 즐거움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된다. 하물며 여행을 갈 때 지인이 준 노잣돈도 뒷골을 댕기게 한다. 답례로 사 갈 선물이 늘 머리 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들뜨게 하기 때문이다. 낯선 그 어디에서 운명처럼 만날 그 모든 인연에 설렘을 품는 것이 여행이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보는 사람, 익숙하지 않은 거리,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 모두가 여행의 장신구다.
우리 삶은 동일한 반복을 거부한다. 싫증 낸다. 그래서 변화를 추구한다. 그 시간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그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함을 느낄 때 우린 여행을 떠난다. 그러니 여행은 우리 삶의 활력을 주는 삶의 동반자와 같다.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낮 선 곳의 여행은 다름이 존재하고 그 다른 것들이 불쑥 다가온다. 흥미를 당긴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낮 선 곳이라 함은 내 몸의 모든 감각 기관이 경이로움을 표하는 것이다. 전두엽에서는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지나온 일들을 한순간에 슈퍼컴퓨터가 되어 정리하고 지워버리기도 한다. 기억의 세례다. 그리고 감각기관들은 총체적으로 반응한다. 시각은 황홀함을 느끼고, 촉감은 모든 피부세포가 문을 열어 받아들인다. 후각은 향기에 마비된다. 이 모든 것은 동시에 발생하기도 하고 하나씩 찾아오기도 한다. 이러한 것이 낮 선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선물은 때로는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고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62살의 나이에 아나톨리아 도보 횡단 계획을 세우고 떠난다. 이 횡단은 이스탄블에서 시안까지로 1만 2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 횡단이다. 4년의 시간을 예정하고 떠난다. 하루에 40km를 걷는다. 그 횡단 과정의 책이 ‘나는 걷는다’이다. 그런데 그의 책 어디에도 사진 한 컷 하나가 없다. 다만 길이 있을 뿐이다. 4년의 여행 기간 질병과 부상으로 수차례 여행이 중단된다. 심한 이질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한다. 그러면 그는 처음 중단된 것으로 다시 돌아가서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발이 멈춘 곳에서 다시 걷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느리게 가겠다는 그의 원칙을 4년 여행 끝까지 지킨다. 우리의 바쁜 여행과는 다르다. 시각만을 위한 여행이 아닌 것이다. 여행하려는 것은 한편,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뭔가 특별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사피엔스의 ‘의미 중독 증세’라 치료가 어렵다.
피곤한 여행을 애써 만들지 말자. 천천히 살아도 달라질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행지의 풍경이 주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만이 아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자신에게 답을 주는 것이다. 자연은 항상 그대로지만 느낌을 받아들이는 우리는 늘 다르다. 자연은 말하지 않아도 인식의 전환과 삶의 여유와 철학을 품고 있다. 여행을 통해 우린 자연에서 그것을 끌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사진기에 담을 시간과 더불어 마음이 담을 시간도 주자.

 

알랭드 보통은 “우리는 이국적인 것을 찾아서 그리고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라고 했다.

ESL영어 무료 강습을 배우러 다닐 때 어느 강사가 한 말이 있다. 남편이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는 시간이 없었고 오일값의 폭락 여파로 남편이 직장을 잃게 되어 시간이 많아지니 이번엔 돈이 없어 여행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넋두리했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 사람이야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나지만, 이것저것 걸릴 것이 많은 우리네는 쉽지 않다. 그래서 로또에 기대고자 복권을 구입해보지만 번개 맞을 확률 보다 떨어지니 차례 기다리다 목젖이 떨어진다.
조건이 갖추어져야 여행을 떠나려 한다면 정말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우리가 여행계획을 세우는 것은 자신의 조건을 분석해서 향후 몇 개월 후에 부족한 점을 채우고 부족한 상황에서라도 가능한 범위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다. 인도에 푹 빠진친구가 있었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출판한 책이 인기를 끌면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쓸어모아 인도를 간다. 6개월도 좋고 1년도 좋고 인도에서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생활한다. 여행하기보다 살러 가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그의 용기에 우리 친구들은 늘 부러워했다. 그 친구와 우리들의 차이점은 그 친구는 떠난다는 것이다. 우린 준비가 되어도 미련이 많아 떠나지 못하고 뭉그적거린다. 회사 걱정, 애들 걱정, 돈 걱정 등등으로 미적대다 결국은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다음에는 꼭 가겠다고 가능성도 없는 다짐을 한다.

 

연암 박지원은 “걷기 그것은 곧 인간본연이다”라고 했다.

여행을 어렵게 만들지 말자. 걷는 것이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어디를 걷느냐가 다를 뿐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직립보행이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다. 여행은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여행 대부분이 걷기 때문이다. 걷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만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모든 사물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차로 이동하는 것은 편하지만 편한 만큼 많은 인연을 놓치고 자아도 놓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걷기란 두 발을 움직이는 물리적 운동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정신적 행동이다.”라고 했다. 4년간 1만2천km를 걸은 사람의 말이다. 인생은 끝이 있다. 그러나 길에는 끝이 없다. 다만 각자가 정한 길의 끝이 있을 뿐이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이 아니어도 여행의 길은 삶의 길에서 내려놓지 못한 것을 두고 오는 길이고 미처 열지 못한 마음의 문을 여는 길이다. 그래서 우린 걷고자 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