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인간은 왜 일상적으로 ‘화’를 내며 살까?

‘화’는 본능적이며 중독 증상을 보인다.

간혹 우린 묻지 마 폭력이라는 기사를 접한다.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해 아무 이유도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살면서 화를 한 번도 안 내고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무인도에 혼자 살아도 자신에게 화를 낸다. 자신이 못마땅해서, 혹은 실수를 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화를 갖고 태어났다고 봐야 한다. 태어나는 순간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첫 번째 하는 일이니 ‘화’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개인의 화는 싸움을 불러일으키고 국가의 화는 전쟁을 초래하기도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먹이를 두고 상대를 제압하거나 지키기 위해 화를 낸다. 그런데 인류는 먹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많은 일로 화를 내고 싸운다. 자신의 수명을 단축하는 아주 해로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화를 내고 때로는 화가 정도를 넘어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마약처럼 반복되기 일쑤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듯이 화도 내는 사람이 자주 낸다. 그러니 화는 중독성이 있다.

 

‘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화’는 한자로 火, 즉 불’화’를 쓴다. 그러니 화가 난다는 것은 내 안에서 불이 난다는 것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의 공통점은 열이 많고 몸이 긴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금방 피로해진다. 사전적 의미로는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생기는 노엽고 답답한 감정”이라고 한다. 마음에 불편함을 쌓아 둔 사람이 얼굴이 붉어지며 답답함을 호소할 때 옛 어르신들은 ‘화병’ 때문이라고 하셨다. 의학적으로 화병은 하나의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감, 식욕저하, 불면 등의 우울 증상 외에도 심하면 호흡 곤란이나 몸 전체의 통증과 명치에 뭔가 얹힌 듯한 신체 증상이 동반된다. 그래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가슴을 치면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 것도 이런 증상 때문이다.

화와 분노는 다르게 발생한다. 화는 순간적으로 나는 것이라면 분노는 화를 참고 참다 폭발하는 경우다. 그래서 분노는 더 오래 지속하기도 한다.

 

‘화’는 왜 날까? 우린 왜 ‘화’를 내는 것일까?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한마디로 정의하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기분 좋은 사람이 웃으면서 화를 낸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취급 받을 것이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또는, 누구로부터 위협을 받았거나 폭력을 당했을 경우다. 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리적 폭력은 신체적 통증을 동반하는 것과 함께 주로 모욕감을 동반한다. 단순한 신체적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만, 모욕감을 동반한 폭력은 쉽게 잊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폭력의 대표적인 것이 ‘언어적 폭력’이다. 욕을 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주거나, 무시하거나 등 정신적 폭력은 훨씬 다양하다.

 

이심전심, 염화미소

정신적 폭력의 특징은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쉽게 잊는데 당한 사람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 특히 부부싸움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꼭 말을 해야 알아듣냐!, 말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아듣냐! 로 시작한 부부싸움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빙하기를 가진다. 그렇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 화해하고 잊고 지내지만, 다시 싸우게 되면 서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한 말보다 상대가 상처를 준말만 기억하고 “그때 당신이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았느냐”고 지난 이야기를 꺼내 들이민다. 잊지 말자 나도 상대도 독심술 능력은 없다. 이심전심, 염화미소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불교의 진수를 제자(가섭)에게 전할 만큼 경지에 오른 석가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하긴 석가는 모두가 부처라 했으니 우기면 당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언어로써 전달되는 정신적 폭력은 대부분 의도하지 않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의도된 정신적 폭력이라면 그 충격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정신적 폭력의 또 하나는 자학하는 Self 폭력이다. 스스로가 자신을 확대하는 폭력이야말로 대인관계를 피하게 하거나 우울증에 빠지게 하며 심하면 자살을 감행하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분이 얹잖게 되는 폭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을 때, 둘째, 자신의 진심이 왜곡되어 전달 될 때, 셋째, 현실이 자신의 기대치와 다르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넷째,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다섯째, 스스로가 자제력을 잃었을 때, 여섯째, 상황에 대한 좌절을 느꼈을 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내 안엔 내가 너무 많아~” 하는 노랫말이 있다. 그리고 우린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고 하는 말은 듣기도 한다. 화를 낸 당사자가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매튜 맥케이 임상심리학자의 말을 빌리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가 화를 내게 되면 우리 몸은 비상체계로 전환된다고 한다. 원초적인 상황에서 화는 자신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라는 것이다. 전자동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인체는 위협에 대해 감정 자극을 맡은 ‘변연계’ 가 경보음을 울리고 ‘분노 호르몬’을 혈액으로 보내 신체 근육을 강화하도록 한다. 그래서 일단 혈류는 머리로 향하지 않고 몸의 근육으로 보내져 근육을 단련하고 전투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생각은 잘할 수 없다고 한다. 화가 난 행동을 나중에 후회하며 “내 정신이 아니었어.”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신경회로는 한 번 간 경로를 쉽게 잊지 않아 반복되면 처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기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화가 날 수도 있다. 화를 푼다는 것이 화를 내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화는 인간이 가진 희로애락의 감정 중 가장 대표적인 감정으로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감정이다. 먹을 것이 없어 동물과 싸워야 했던 원시인에게 ‘화’는 필수적인 감정이었다. 더는 먹을 것을 갖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현대사회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화’를 내고 있는가? 관념적 허상을 중시하는 인간은 명예를 중시한다. 그러나 그 명예를 위해 내는 ‘화’는 명예는 물론 생명의 단축도 가져온다. 그런데도 ‘화’를 내는 인간은 ‘화’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화를 낸 다음에 나오는 공격적인 행동 때문이다. 사고로 공격적 행동을 제어할 전두엽에 문제가 있지 않다면(문제가 있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전두엽과 전투를 치러야 한다.

(뇌의 전두엽은 고등 정신 기능 중에서 동기를 유발하여 주의력을 집중하고, 조화롭고 목적 지향적인 사회적 행동을 하게 하며 감정적 긴장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감정과 분노를 조절하는 브레이크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두엽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와 같다.)

다음 호에서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과 ‘화’는 나는 것인지 내는 것(나의 동의 하에)인지 의문을 가져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