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선의 실타래

탄광의 1,900명 광부 중 57%가 탈출을 했다는 지옥 섬 군함도!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서 살점이 묻어나도록 모진 고문을 당했어, 살인마가 따로 없었어!”……16세에 강제 징용된 최장섭의 회고

 

영화 군함도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는 군함도를 보았다. 극장에는 외국인 2명을 포함 총 8명이 개인 전용관이라 생각하며 관람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 탈출에 성공하는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출연진의 이름이 스크린을 채웠다. 스크린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극장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휴지로 눈물을 닦는 사람만이 있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기를 거의 3분여 시간이 지났을까? 소리 죽여 울던 나이 든 외국인 커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한 명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극장 안은 여전히 감동의 침묵만이 흘렀다.

극장 문을 나서며 왜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을까 생각해 보았다. 친일세력과 일본사람들이 보았다면 분명 고증이 어쩌네 하면 트집 잡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류승완 감독에게 고마움을 가졌다. 사실 영화가 제작되기 전에 난 군함도를 모르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그것을 깨우쳐 준 감독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우리 전통을 사이사이 살려낸 마당극 한마당 군함도

내가 본 영화 감상평은 한마디로 마당극 한마당을 걸판지게 본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품바 타령의 느낌을 황정민 공연에서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육군기로 욱일승천기라고도 하나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를 사다리를 세우기 위해 유랑극단 단장(황정민 역)이 배로 가로질러 자를 때는 살풀이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욱일기를 찢는 장면은 일본의 패망을 상징하고 한편으로는 목숨을 걸고 싸우던 독립군과 영문도 없이 일제 침략자들에게 끌려가 희생당한 넋을 위로하는 모습으로 참으로 통쾌함과 더불어 가슴이 아려왔다. 또한, 나가사키에 터진 원자폭탄의 섬광을 바라보며 “저기도 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는데” 하며 넋두리하는 한 배우의 대사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말로와 더불어 그들이 조선에 가져다준 불행의 깊이를 느끼게 하였다. 왜 우리 민족이 그들에게 끌려가 무고한 희생을 치러야 했는가?

 

일본의 조선 침략은 날 강도의 흉악무도한 범죄행위이다.

만약 평화로운 마을에 강도가 들이닥쳐 순박한 가정집에 쳐들어가 총 칼로 위협하고 재물을 빼앗고 엄마, 누이를 성폭행하고 남자는 납치해 노예로 부리고 여성들은 성 노리개로 부렸다면 누구나 말할 것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놈들이 있는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라고!

이런 모든 일이 일본 침략전쟁의 진정한 모습이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남의 나라를 총칼을 앞세우고 쳐들어가 무참히 짓밟고 우리 민족을 노예로 삼았던 제국주의 일본의 참모습이다. 그 아무리 사죄하고 사죄해도 용서하기가 어려운 침략자들의 횡포가 아닌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낳은 레드 콤플렉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없었다면 남과 북의 갈라짐도 없었을 것이요. 군함도에서 징용자들을 갈취하며 제 배를 불리고자 일본 소장과 결탁한 친일세력도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으로 해방 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는 비극의 시작도 없었을 것이다. 남과 북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남한 단독정부 수립도 없었을 것이니 남북의 갈라짐으로 인한 1950년 한국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장기독재를 위한 레드콤플렉스(공산주의에 대한 과민반응)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힐 일도 없었다. 보수와 진보의 나뉨이야 전 세계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적어도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세력이 한국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더더욱 될 수 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분들이 공산주의라고 하면 치를 떠는 것과 부패한 권력이 남한 정부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낼 정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로 나눠질 수야 있지만 부패한 정권이 보수 정권의 탈을 쓸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사회에 만연한 레드콤플렉스 탓이다. 그리고 정권이 재벌과 결탁하여 부정축재를 일삼고 있으면서도 마치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고 있는 수호천사임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것도 레드콤플렉스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각색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역사와 조선 민족을 다 엉망으로 만든 침략자 일본

이 모든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바로 자국의 이익에 눈이 멀어 다른 국가를 제물로 삼은 제국주의 일본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도같은 침략이 없었다면 이 모든 슬픈 역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이 힘이 없었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있지만 힘없는 사람은 때리고 가진 것을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라 강도국가인 것이다. 자기반성은 자신의 부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함을 부여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거짓 반성이다. 나약해서 당했다는 것은 당한 자의 반성이지 결코, 침략의 강도질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일본의 침략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같은 희생을 치렀다. 또다시 이런 전쟁의 참혹함이 되풀이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나 언제 전쟁이 약소국 사이에 발생한 적이 있었던가? 바로 강대국의 야욕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강대국의 검은 손이 약소국 정권의 뒤에 드리어져 있는 것이다. 현재 남과 북의 긴장이 진정 남과 북의 갈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강대국의 이익에 중요한 위치로 보는 강대국의 이익 논리에 의해 다툼이 발생하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남과 북의 평화협상이 진전되고 정치가 아닌 경제를 비롯한 문화 체육 전반에 대한 교류가 활성화되어 있었다면 그래서 남과 북이 상생하고 있었다면 오늘날의 남과 북을 앞세운 강대국의 긴장국면은 애초에 이 땅에 발을 디딜 틈이 없었을 것이다. 이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도 반복될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나침판과 같다. 한반도의 긴장으로 남과 북은 소모로써 생명을 다하는 무기구매에 큰 비용을 들이고 있다. 전 국민에게 획기적인 복지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예산이 쓸데없는 군비에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군함도는 자랑거리가 아닌 그들의 치부다.

군함도 한 편의 영화가 어찌 군함도 조선 징용병들의 사연을 다 담을 수 있었겠는가? 그곳에서 일한 조선인 강제 징용자가 거의 8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120여 명이 갱도에서 질식, 외사 등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군함도를 일본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으로 유네스코 등재신청을 하였고, 2015년 유네스코는 조건부 승인을 했다. 강제 노역에 대해 분명한 명시를 하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수상이 전범 묘소에 신사참배를 하는 일본이 이러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키고 안 지키고에 따라 일본이 저지른 수치스러운 역사적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의 80년이 되었어도 유대인 학살에 대한 반성을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하는 독일이 왜 진정한 선진국인지 일본은 깨달아야 한다. 잘못된 범죄는 당한 사람의 용서 이전에 스스로가 자신을 벌하고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 당한 사람의 용서는 그다음이다. 제 72주년 광복절을 맞아 그 언젠가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일본 정부의 수상이 독일의 수상처럼 사죄하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