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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100주년을 맞이하는 SAIT

10월 16일이 되면 SAIT(Southern Alberta Institute of Technology)가 100주년을 맞이한다.

1916년 10월 16일에 PITA(Provincial Institute of Technology and Art)라는 교명으로 문을 연 이 학교는 캐나다 최초의 기술전문 고등교육기관이면서 북미에서 최초로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술학교(polytechnic)이다.

다섯 명에게 금속 가공 기술을 가르치면서 첫 학생을 받았던 이 학교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군인 6명이 추가로 등록하면서 11명의 정규학생을 데리고 8달짜리 모터 기계공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후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저녁반, 주말반에 등록해서 전기, 수학, 제도, 간호, 회계, 부기, 학습지도, 석탄 채굴 등을 배웠다.

3년 안에 서부 캐나다를 깜짝 놀라게 만들겠다던 첫 총장 제임스 C. 밀러의 약속은 지켜졌고, 100년을 채우면서 이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적절한 기술 훈련을 제공하는 것은 지난 100년 간 이 학교의 특징이 되었다.

1916년부터 1920년까지는 퇴역 군인 재교육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일반인들의 교육으로 중심을 옮겼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대공황이 1924년에 캘거리 남서쪽 터너 밸리(Turner Valley)에서 발견된 유전으로 인해 끝나면서 PITA는 서부 캐나다의 첫 유전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지질학자와 기술자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어려운 시절이 닥쳤을 때는 실직자들에게 무료 교육과정을 제공했고, 강사들도 무료로 봉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PITA의 교육 방향을 변화시켰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많은 프로그램들이 캘거리 스탬피드의 옛 그랜드스탠드 빌딩에서 진행되었다. 전후의 경제 호황은 PITA의 규모를 가장 크게 확장시켰다. 전쟁 직후에는 2,000명이 되지 않던 학생수는 1980년대 초반에는 50,000명이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1960년에 PITA는 교명을 Southern Alberta Institute of Technology로 바꾸었고, 예술관련 학과는 Alberta College of Art로 분리시켰다. 1962년에는 SAIT를 본떠서 에드먼턴에 NAIT(Northern Alberta Institute of Technology)가 생겼다.

1982년에 SAIT는 알버타 교육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했고 SAIT 운영위원회(board of governors)는 비즈니스 리더로 변모했다. 확실하게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사업적 원칙들과 사업들이 만들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10억 불을 들여서 North Hill 캠퍼스를 새롭게 변모시켰다. 현재 SAIT의 캘거리 캠퍼스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로 활기에 차 있으며 SAIT도 프로그램들을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1916년에 학교를 세우면서 알버타 주정부가 정한 원칙은 명확하다. “이 학교는 기존의 교육시스템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의 상황과도 연계되어 있어야만 한다. 가장 최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학교 책임자와 직원은 산업 현상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산업 및 상업 분야에서의 교육 수요를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에 가장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SAIT의 전통이자 특징이다.

2015_sait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