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 한인역사

이민 1세대에게 듣는 캘거리 한인 역사 이야기 1-1

본지 특별기획 “캘거리 한인 반세기 역사”는 월간 This Time을 통해 지난 2016년 2월부터 시작됐으며 현재 This Time 주간지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독자들과 캘거리 한인역사를 공유하기 위해 이번주부터 This Time 웹페이지에서도 연재가 시작됩니다. 아울러 캘거리 한인역사에 대한 여러분의 귀한 제보와 의견,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어느 가요의 제목이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살면서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느꼈지만, 사람이 주는 감동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던 것 같다. 타향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종종 뼈 속까지 파고드는 ‘향수’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 불청객 또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치유해 주곤 한다. 때로는 상처를 받을지라도 우리는 한국 사람들, 내 나라 사람들을 통해 고국에 계신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매를 만나며, 친구를 만든다.

지금이야 캘거리 어디에서나 한국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50여년 전, 반세기 전의 캘거리에서는 한국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1960년대 말, 이 곳 캘거리로 이민을 와서 ‘한인 역사’의 씨를 뿌린 사람들, 캘거리 한인사의 ‘개척자’들은 말 설고, 물 설고, 음식 설은 이 곳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냈을까? 캘거리 이민 1세대, 라병학, 양재설, 차광준, 최병기 네 분을 This Time의 발행인 조광수씨와 함께 만나봤다.

 

1967년도 캘거리 교민 사진

 

1972년 스탬피드 퍼레이드에 한인단체 최초로 참여

박근희: 먼저 캘거리에는 언제 오셨는지 이민을 오신 지 몇 년이 됐는지부터 이야기 해 주시겠어요?

 

라병학: 1967년 12월 22일에 왔습니다. 48년 됐네요…

 

양재설: 저는 68년 4월 5일에 왔습니다.

 

차광준: 저도 1968년 11월에 왔습니다.

 

최병기: 여기 모인 분들 중에는 내가 캘거리에는 가장 먼저 온 것 같아요. 1967년 1월 4일에 여기 도착 했는데 당시는 이민으로 온 사람이 없어서 두달가량 한국 사람을 찾으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다운타운에서한국 분을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아무리 봐도 한국 분 같아서 짧은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한국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그 분이 김형수씨인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 말씀이 Lethbrige에 한국분이 또 계시고 텔러스 전화번호부를 보면 캘거리에 살고 있는 ‘닥터 김’이라는 분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찾아봤더니 정말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즉시 제 하숙집으로 달려오셨어요. 그 분이 바로 김창영 박사입니다. 당시 김박사는 이민이 아니라 캘거리대학교 물리과 교수로 와 계셨고 나중에 이민을 하셨습니다.

 

박근희: 그럼 1967년, 1968년에는 캘거리에 한국인이 대략 몇 분 정도 계신 것이었나요?

 

최병기: 이 사진은 1967년도에 찍은것인데 빠진 사람 몇 명 있어도 그 사진에 있는 사람이 거의 다 일 겁니다. 오필오씨가 빠졌네요…

 

라병학: 그 때 가장 선두에서 일을 많이 하신 분이 계십니다. 아까 최병기씨가 말씀 하셨던 김창영 박사와 부인 염순복 장로님.. 한국 사람이 캘거리에 온다는 소식만 들리면 한분 한분 공항에서 픽업을 하고 구경을 시켜 주고, 자기 집에서 대접을 하셨어요. 그 때는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두 분이 겸손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 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때는 한국이 어려울 때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청운의 꿈을 품고 캐나다로 왔는데 언어의 장벽이 있었고 그랬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준법하고 교민모두 한 마음이 돼서 살았어요..

 

박근희: 한인들이 한 마음이 돼서 가족처럼 살았다고 하셨는데요.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어떤 구심점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민사회에서는 그 역할을 하는 것이 ‘한인회’가 아닌가 싶은데.. 캘거리한인회는 언제, 어떻게 시작이됐나요?

 

최병기: 오타와에서 백선엽 대사가 체크 20불을 보내와서 한인회를 조직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당시는 한국사람이 몇명 안됐지요. 1967년12월 21일에 김창영 박사의 집에 모여서 한인회를 결성하기로 했어요. 김창영 박사가 회장, 내가 총무를 맡기로 했고 회계연도를 68년 1월로 해서 한인회가 시작이 됐습니다. 그리고 1968년 8월에 백선엽 대사가 와서 비행장에서 픽업을 해서 밴프 미네왕카 호수에 갔었고 그 때 찍은 사진이 이것입니다.

 

1968년 백선엽 초대 캐나다 대사(사진중앙)와 함께 밴프 미네왕카 호수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