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소
1990년 초반에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폭발적이었던 이 음악은 국악계에서도 화제가 됐었다. 그 이유는 이 음악에서 우리악기 태평소의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고 클래식 채널인 KBS 1FM의 국악 프로그램에서도 하여가가 선곡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태평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어딘지 애잔하고, 씩씩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드러운 태평소의 매력에…
‘태평소’의 ‘소’ 자는 입으로 부는 악기, 즉 ‘관악기’라는 뜻이고 ‘태평’은 ‘크게 다스린다(太平)’는 의미다. 그러니 그 이름만으로 보자면 태평소는 세상을 태평하게 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일 것이다. 실제로 태평소가 긴 가락을 뽑아내면,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벌판을 보는듯 평화롭고 장쾌한 느낌이 드는데 고려 시대의 문인 정몽주는 자신의 시 ‘태평소’에서 이런 표현을 했다. “높은 소리 한 가락이 달을 담아 놓았고… 낮게 부는 소리는 객정을 돋우네.” 이 표현에서 알수 있둣이 태평소의 낮은 음색에는 마음을 파고드는 애잔함이 배어있다.
정몽주는 태평소가 ‘청상기(淸商伎 : 수나라)’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이것으로 태평소의 원류가 중국에 인근한 서방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태평소를 또한 ‘호적’이라고도 부르고 ‘쇄납’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역시 이 악기가 지나온 지역인 몽고(수루나이라고 부름, Surunai), 인도(수르나, Sur-na) 등에서 부른 명칭과 관련이 있다. 태평소를 순 우리말로는 ‘날라리’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태평소의 음색을 따라 지은 이름으로, 묵직한 음정의 끝을 마음껏 날리고 흔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듯하다.
태평소의 관대는 주로 대추나무로 만든다. 그리고 연주자가 불어넣은 입김은 관대를 통과 한 뒤, ‘동팔랑’에 도착해서 쇳소리로 변하는데 동팔랑은 태평소 아랫부분에 쇠로 만든, 깔때기 모양을 한 것으로 그 생김새에서 알 수 있듯이 소리를 확성해 준다.
태평소는 쓰임새가 다양한 악기다. 지난호 국악의 향기에서 소개했던 ‘풍물놀이’에서도 태평소가 무척 중요하다. 풍물패가 연주하는 악기는 모두가 타악기인데 유일하게 태평소만이 선율악기이기 때문이다. 풍물이 시작하면 제일 먼저 태평소가 드높은 가락으로 시작을 알리고 시종일관 타악기들 가운데에서도 돋보이는 가락을 연주한다. 또한 행진음악인 대취타에서도, 그리고 불교음악인 범패에서도 태평소가 연주된다.
태평소는 또한 국악기 중 가장 음량이 큰 선율 악기이다. 그래서 언뜻 들으면 그 소리가 거칠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애처로운 느낌이 감돌고, 거친 부드러움이 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 태평소는 요즘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만나고 있다. 재즈음악에서는 섹소폰과 마치 형제처럼 가락을 주고 받고, 떠들썩하고 시원한 음색으로 롹과 어우러지기도 한다. 하여가를 통해 힙합과 만났던 태평소는 이제 어느 장르의 음악과 만나도 어색하지 않는 대표적인 국악기가 됐고, 듣는 사람의 가슴까지 뻥 뚤리게 해 주는 태평소의 시원한 가락은 우리의 신명을 대표하는 소리가 되었다.
박근희(국악칼럼리스트)